[朝鮮칼럼 The Column] 조선시대 프레임을 버려야 할 때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입력 2019.07.22 03:17

도덕 지향과 士農工商 풍조, 기업인 위상은 최저 수준… 중국에 대한 事大도 비슷
일본엔 과잉 대응하면서 사드 보복 등에 아무 소리 못 내… 조선의 실패 되풀이하지 말아야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와 닮은 점이 참 많다.

첫째는 도덕 사회 지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추구했던 이상 사회는 '백성들 모두 도덕군자가 되는 사회'였다. 대표적으로 조광조가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종에게 강도 높은 성리학 강연을 하다가 '짤렸다'.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다. 지금 사회 역시 도덕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다. 공직자든, 연예인이든 모두 사생활이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 기업도 돈만 벌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 수익성이 우선 되어야 할 국민연금마저 기업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공직자 청문회는 30년 전 잘못까지 따진다. 세계에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도덕이 더 중요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는 사농공상(士農工商) 풍조이다. 조선은 늘 상공업을 천시해 왔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공무원 할 생각만 했으니 나라가 융성할 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뒤처진 것도 이러한 풍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 지폐에 등장할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라는 사람은 19세기 말 대장성의 유능한 관료였지만 과감히 상공인의 길로 들어서 일본 부흥의 길을 이끌었다. 조선에서는 양반이 상공업에 종사하려면 양반 직을 버려야 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 먹고사는 것은 해방 이후 산업 입국 정신 덕택이다. 사농공상에서 벗어나면서 뛰어난 기업인이 등장하고 정부는 기업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기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농공상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학자들이 꿈꾸는 이상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반(反)기업 정책들이 양산되면서 상공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미래 산업 역시 이념에 막혀 있다. 기업인 위상은 최저 수준이다. 정치인 만나면 깍듯이 인사해야 하고, 각종 행사나 국정감사장까지 불려다니는 모습은 매우 후진적이다. 잦은 출국 금지와 압수 수색, 배임으로 너무 쉽게 범법자로 몰고 가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다.

셋째는 나만이 옳다는 편협함이다. 조선은 성리학 이념과 당파 이익에 따라 분열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선조 때 기축옥사를 들 수 있다. 서인이었던 정철이 정여립 모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동인 1000여 명을 처형했던 사건이다. 이후 서인이 장기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조선사회의 유능한 인사는 절반이 괴멸되었고 곧이어 임진왜란을 맞이하면서 나라는 결딴났다.

지금 우리 역시 이념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시대의 동인-서인이 좌파-우파로 무늬만 바뀌었을 뿐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똑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편협함이 이념을 만나면 광기가 일어나는 적이 많았다. 방향만 다를 뿐이다. 우리도 좀 넓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공존하면서 다양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톨스토이는 깊은 강물에는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얕은 개천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놀란 송사리들이 물을 흐리고 주변이 시끄럽다. 큰 물고기는 아예 살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깊은 강물일까, 아니면 얕은 개천일까?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이다. 조선에 중국은 황제의 나라였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어 우리는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사드 보복, 자동차 배터리 차별과 같은 황당한 공격을 받아도 아무 소리도 못 낸다. 반면 일본에 대하여는 과잉 대응한다. 지금이 애국, 매국 운운하면서 항일 투쟁할 때인가. 우리가 미·일 동맹에서 벗어나는 순간 조선시대처럼 중국의 '밥'이 될 수 있음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막을 내리고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에서 손을 떼고 있다. WTO 체제나 국제 규범 같은 것은 역사의 유물이 되고 있다. 세계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힘이 약한 나라는 하소연할 곳마저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힘을 모아 부국강병 해야 하는데 조선시대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한 요원하다. 하루빨리 프레임을 바꾸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조선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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