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새누리당 시즌2'로 집권하겠다는 착각

배성규 정치부장
입력 2019.07.22 03:15

자아도취 한국당, 민심과 괴리… 속은 '웰빙당', 겉은 '반응당'
새 인물도, 시스템도 안 보여… 한국당이 '총선 칼날' 맞을 수도

배성규 정치부장
요즘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만나면 예외 없이 유튜브 얘기부터 꺼낸다. 청와대와 여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욕설과 막말도 뒤섞여 있다. 일부 친박(親朴) 인사는 "이미 TK는 끝났고 PK도 넘어왔다"고 말한다. 영남만 석권하면 총선은 이길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 저잣거리 민심은 한국당 기대와는 다르다. 젊은 층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다가도 한국당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찌푸린다. "뭐라 해도 한국당엔 손이 안 간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비박(非朴) 인사들도 한숨을 내쉰다. 한국당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비호감'이 '호감'의 세 배에 달하고, 당 지지율은 20%대에 묶여 있다.

일부 의원은 "여론조사가 엉터리"라고 하지만 여의도연구원 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한 소장 의원은 "총선을 뭐로 치를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세울 인물도, 전략도, 비전도 없다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됐지만, 한국당이 일신(一新)했다는 징표는 어디에도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새누리당과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누구도 제대로 답을 못한다.

황 대표의 독자 브랜드와 노선이 뭔지부터 애매하다. 과거 탄핵 사태에 대한 반성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잠시 물러앉았던 친박 인사들은 다시 안개처럼 황 대표 주변을 감싸고 있다. 관심은 당직을 장악하고 내년 총선에서 공천받는 데만 쏠려 있다. 인물·노선·체질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그래도 당 지도부는 '순항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황 대표 주변에선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게 더 문제다.

원내에서도 대여(對與) 투쟁 목소리만 높다. 실질적 의정(議政)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경제·안보 실정(失政)에 비판과 반대만 할 뿐 실효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 야권 핵심 인사는 "정부의 잘못이 뻔히 보이는데도 상임위에서 추궁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현안 심사도 대충대충 한다. 답답하고 무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웰빙당'이니 '냉무(내용無) 정당'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일부에선 "'반응당(黨)'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자기 정책은 없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날 선 비판' 반응만 내다 대선·총선에서 잇따라 패한 과거 한나라당에 빗댄 것이다. 입만 열면 막말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자기도취'에 빠져 '유튜브 사이다'에 중독된 결과다. 일부 극렬 지지층의 목소리를 다수 여론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당의 체질을 바꿀 '새 인물'도 안 보인다. 대부분 새누리당 때 사람 그대로다. 신진(新進)을 키워낼 당내 시스템이나 역량은 보이질 않는다. 외부 영입도 첫발부터 꼬였다. 당사자에게 접촉도 하지 않고 명단부터 공개하는 자충수를 뒀다. 이래선 '스스로 인재 양성도 못하는 불임(不妊) 정당'이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부에선 "친황(親黃)·친박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우려도 적잖다. 공천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여의도연구원장 교체설이 나온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 민심의 심판대에 선 것이 현 정권이라고 여긴다면 한국당의 큰 착각이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 이상으로 한국당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황교안호(號)'가 환골탈태하지 못하면 총선에서 민심의 칼날을 맞는 건 한국당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시즌2'나 '영남 자민련'으로는 총선 승리도, 집권의 꿈도 난망(難望)하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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