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는 가라… 닭껍질부터 귤껍질까지 '껍데기' 전성시대

입력 2019.07.20 03:00

[아무튼, 주말]
알맹이보다 대접받는 껍데기

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2019년에도 그럴 수 있었을까. 껍데기, 정확하게는 껍질이 올여름 한국을 강타했다. 닭·돼지·명태에 양파·귤·수박·참외 등 온갖 식품의 껍질이 알맹이보다 오히려 더 대접받는 세상이다.

닭 껍질 튀김, 치킨 덕후 덕분에 날다

최근 껍질 음식의 인기는 닭 껍질이 선도하고 있다. KFC는 '닭 껍질 튀김'을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역점, 노량진역점 등 6곳에서 한정 판매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반응은 첫날부터 폭발적이었다. 여섯 매장에서 모두 반나절 만에 동났다. '개장 30분 전에 갔는데도 15명이 줄 서 있었다' '문 연 지 30분 만에 품절이라 2개 구매한 사람에게 웃돈 주고 샀다'는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왔다. 닭 껍질 튀김이 폭발적 인기를 얻자 치킨 프랜차이즈와 편의점도 나섰다. BBQ는 지난 8일 사이드 메뉴로 '닭 껍데기'를 선보였다. BBQ 측은 "추가 물량을 요청하는 지점이 많다"며 "하루 1000세트 넘게 팔리고 있다"고 했다. GS25는 19일 '바삭한 닭 껍질 튀김'을 내놨다.

닭 껍질 튀김은 닭에서 껍질만을 발라내 가늘게 잘라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제품. KFC 제품 기준 가격은 2800원에 분량은 70g으로 닭 껍질 튀김 10~12점이 담겨 있다. 닭튀김의 껍질만 떼어내 먹었을 때와 맛이 거의 같지만, 물컹한 부분이 없고 더 바삭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 제품이 국내 출시된 건 한 'KFC 치킨 덕후(마니아 팬)' 덕분이다. 그는 지난 5월 인도네시아 KFC에서 닭 껍질 튀김 판매를 시작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신제품을 직접 맛보기 위해 그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행 비행기표를 끊었지만,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대선 불복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진 것. 위험한 상황에 결국 그는 자카르타행을 포기했지만 닭 껍질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KFC에 글 하나씩만 남겨주시면 우리 다 같이 닭 껍질 튀김을 먹을 수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간절한 그의 호소에 네티즌들이 움직였다. KFC코리아 관계자는 "하루 300통 넘는 문의가 쏟아져 고객 상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했다. "닭 껍질 튀김은 연초 열렸던 KFC 아시아 콘퍼런스에서 인도네시아 측이 선보인 신메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올해 출시할 생각이었는데, 네티즌 요청이 잇따르면서 일정을 급하게 앞당겼죠."

KFC 측은 "닭 껍질 튀김 판매점을 40곳으로 늘렸으나 여전히 정오쯤이면 동나고 있다"며 그러나 "판매를 전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가장 부드럽고 쫄깃한 닭 가슴 부위 껍질만을 사용하다 보니 닭 두 마리를 작업해야 제품 하나를 만들 수 있는데, 원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거든요."

다이어트 간식으로 대박 난 돼지 껍질

닭 껍질보다 더 넓게 그리고 더 오래 사랑받아온 껍질은 돼지 껍질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돼지 껍질 요리법이 있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돼지 껍질을 먹어왔다.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1809년 펴낸 생활 백과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돼지 껍질을 고아서 묵처럼 엉기게 하여 족편처럼 먹는 '저피수정회법(楮皮水晶膾法)'이라는 음식 조리법이 소개됐다.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중국 후난성(湖南省) 출신 마오쩌둥도 돼지 껍질을 고추와 함께 볶은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돼지 껍질 음식은 '치차론(chicharron)'이다. 돼지 껍질을 뜨거운 기름에 넣으면 뻥튀기 과자처럼 커다랗게 부풀면서 바삭하게 튀겨지는데, 이렇게 만든 치차론을 스페인과 멕시코·아르헨티나·페루 등 중남미에서 간식으로 먹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먹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치차론이 '다이어트·미용 간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돼지 껍질은 콜라겐 성분이 대부분이지만 탄수화물은 전혀 없어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추종하는,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하고 단백질과 지방 섭취를 극대화해 살을 빼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과자 스낵 대용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 '팝의 여왕' 비욘세가 다이어트에 따른 허기를 치차론으로 달래며 감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게다가 콜라겐은 피부 탄력을 유지해주는 보습 효과가 있어 여성들이 치차론을 더욱 즐겨 먹게 됐다.

국내에서는 돼지 껍질을 불판에 구워 먹는 '돼지 껍데기'도 갈수록 인기다. 족발 배달 전문점 '통달배' 대표이자 소·돼지 등 고기에 두루 해박한 최혁준 대표는 "과거 돼지갈비 집에서 서비스로 내던 것이 인기가 좋아지자 정식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했다. "돼지 껍질은 배에서 700g, 등에서 600g가량 나옵니다. 다른 부위 껍질은 반듯한 모양이 나오지 않는 데다 면적이 넓지 않아 상품 가치가 없어 버립니다. 젖꼭지가 올록볼록 튀어나온 돼지 껍질이 나올 때 있죠? 그게 배 쪽인데, 더 부드럽고 고소하지만 불판에 잘 들러붙는 단점이 있어요. 반면 등 쪽 돼지 껍질은 딱딱해서 배 쪽보다 맛이 떨어지지만, 요즘은 기계로 칼집을 넣어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세가 됐죠."

콜라겐 섭취하려면 명태 껍질이 최고?


명태 껍질은 최근 TV 건강 프로그램에 '콜라겐 폭탄 음식'으로 소개되며 재조명받고 있다. TV에 출연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콜라겐을 제대로 섭취하려면 명태 껍질을 먹으라는 것. 콜라겐 흡수 여부는 분자 크기가 관건인데, 돼지·소 등 육류에 함유된 콜라겐은 아미노산이 3000개 이상 뭉쳐진 고분자 구조라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된다. 반면 명태 껍질처럼 어류에 함유된 콜라겐은 저분자 구조로 흡수율이 높다는 것. 육류성 콜라겐의 흡수율은 2%이지만, 어류성 콜라겐은 80%를 넘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윤지현 교수는 "콜라겐은 소화효소에 분해되어 아미노산 형태로 흡수된다"면서 "고분자 구조 콜라겐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시간이 오래 걸려 흡수가 느릴 수는 있지만, 저분자 구조 콜라겐보다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윤 교수는 "단, 현재 유통되고 있는 콜라겐 제품은 주로 소·돼지 등 육상동물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광우병이나 구제역 때문에 육상동물에게서 추출한 콜라겐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생기면서 해양생물 자원에서 추출한 콜라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수박·참외·귤·무·양파… 그 밖의 껍질

뜯어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상품화한 양념 돼지껍질(위)과 치차론 과자 제품들.
음식 쓰레기통에 버리는 과일·채소 껍질도 알맹이보다 오히려 더 많은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요즘 제철인 수박 껍질에는 시트룰린이 풍부하다. 시트룰린은 이뇨 작용이 뛰어나 부종 완화, 혈액 순환을 돕는다. 흰 부분만 도려내 깍두기나 김치를 담글 수 있고, 기름에 볶아도 맛있다. 참외 껍질은 면역 성분과 생리 활성 물질이 과육보다 5배 많아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 얇고 가늘게 썰어서 비빔국수나 물회에 넣어 먹을 수 있다.

귤껍질은 한방에서 '진피'라는 약재로도 쓰인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을 억제해 고혈압을 예방하는 비타민P는 과육보다도 더 많다. 햇볕에 말렸다가 뜨거운 물에 우려 차로 마실 수도 있다. 무 껍질에는 비타민C가 알맹이보다 2배 많고, 식이 섬유와 칼륨이 풍부하다. 당근에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아세틸렌이 들었는데, 대부분 껍질에 있다.

양파 껍질은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고 혈압 조절 기능이 탁월한 케르세틴 성분이 듬뿍 들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플라보노이드는 알맹이보다 30~40배 풍부하다. 국물 우릴 때 넣거나, 차로 우려 마신다. 김치 담글 때 넣으면 신맛이 줄고 감칠맛은 더해진다. '껍데기'여, 가지 말고, 오라.

조선일보 B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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