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벤츠 '국제화물 세탁망' 거쳤나… 환적회사끼리 은밀 연결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7.18 03:23

北사치품, 누가 어떻게 운반했나

미국 민간단체 선진국방연구센터의 추적으로 드러난 '김정은 전용차'의 북한 반입 경로를 보면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국제 화물 세탁망'이 실제로 작동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가용으로 추정되는 두 대의 벤츠 차량이 네덜란드부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4개국을 거쳐 평양까지 반입됐기 때문이다. 100일이 넘는 여정에는 'DN5505호'라는 의문의 배가 주연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한·일의 물류 회사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중국에서 바로 북한으로 사치품이 밀수입됐던 과거에 비하면 과정도 복잡하고 그만큼 단속도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센터가 16일(현지 시각)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0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두 대의 '벤츠 S600 풀만 가드'가 컨테이너에 각각 실린 채 선박편으로 중국 다롄항으로 향했다. 일본에 있는 '주이스요'라는 업체가 벤츠의 수령자로 기록돼 있다. 이 컨테이너는 41일간의 항해를 거쳐 7월 31일 다롄항에 도착했고, 하역 후 8월 26일까지 이 항구에 머물렀다. 이후 벤츠는 일본 오사카항을 거쳐 9월 30일 부산항에 도착한다. '일본 미노로지스틱스'가 '한국 미노로지스틱스'에 이 화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컨테이너는 부산항에 도착한 후 토고 국기를 단 화물선 DN5505호에 옮겨져 러시아 나홋카로 향했다. 센터는 DN5505호가 9월 30일 출발했다고 했지만, 해양수산부가 운영하는 해운항만물류정보시스템은 10월 2일 이 배가 출항했다고 기록했다. 선박은 출항 후 곧바로 선박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자동식별장치(AIS)를 껐다. 대북 제재를 피하려는 선박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 컨테이너를 보낸 회사는 '주이스요'이고, 받는 회사는 '도영 시핑(Do Young Shipping)'이었다. '도영 시핑'은 DN5505호 소유주다. DN5505호는 김정은 전용 차량을 운반한 넉 달 후인 지난 2월 러시아에서 북한산 석탄 3217t을 싣고 포항으로 들어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벤츠 차량은 10월 5일 나홋카에 도착한 후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센터는 이 차량들이 항공편을 통해 북한까지 운송된 것으로 추정했다. 10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간 북한 고려항공 소속의 일류신 IL-76 화물기 3대가 이 차량을 운송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벤츠 차량과 같은 모델은 이로부터 4개월 후인 지난 1월 31일 평양 거리에서 처음 포착됐다.

'벤츠 운반'에 개입한 몇몇 기업들의 정체도 미스터리다. 네덜란드→중국, 부산→나홋카로 벤츠가 운반될 때 개입한 '주이스요'의 사장과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이 화물을 보낸 '일본 미노로지스틱스'의 이사는 송모씨라는 동일인이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또 '일본 미노로지스틱사'의 대표 A씨와 '주이스요' 사장 송씨의 주소지도 같았다고 한다. 이 회사들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시사한다. 다만 A씨는 일본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북한으로 가는 승용차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대북 소식통은 "대북 제재망이 촘촘해지면서 중국을 통한 밀수출에 대한 단속이 늘어나자 '밀반입' 경로가 다국적 다단계로 늘어난 것 같다"며 "이번 사례는 몇몇 특정 기업이 북한을 위한 '화물 세탁망'을 가동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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