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는 '역사의 3등'… 달 착륙 50년 뒤 영웅으로

정시행 기자
입력 2019.07.18 03:00

조명받는 아폴로 11호 우주인 콜린스 - 달 표면 밟지 않고 사령선에 남아
당시 모습 시적·철학적으로 묘사… 50년 기념식에 유일하게 참석

인류 최초의 달 탐사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주인공들이 1969년 7월 발사를 앞두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달에 인간의 첫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 선장,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그리고 달 표면 탐사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서열순으로 앉았다. /AP 연합뉴스
달 코앞까지 가고도 달에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했던 '잊힌 우주인'이 반세기 만에 국보급 영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에선 오는 20일(현지 시각) 아폴로 11호의 첫 인류 달 탐사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당시 우주인 3명 중 유일하게 사령선에 남아 있느라 달에 내리지 못했던 마이클 콜린스(88)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콜린스는 최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의 아폴로 50주년 기자회견 단독 연사로 초청받은 데 이어 16일 미 항공우주국(NASA)이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개최한 기념식에도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처음 발을 디뎠던 그의 동료 닐 암스트롱은 2012년 사망했으며, 그와 함께 착륙해 두 번째로 달을 밟은 버즈 올드린(89)은 현재 학계 행사나 언론 인터뷰 등 공식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다.

미 우주업계에선 콜린스가 1974년 낸 회고록(Carrying the Fire)을 역대 달 탐사 우주인의 저서 중 최고봉으로 꼽는다고 한다. 최근 5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재발간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와 BBC, 에스콰이어 등에 따르면 콜린스는 여느 '우주 영웅'들과 달리 젊은 시절 성취에 매몰되지 않고 이후 화성 탐사를 연구할 정도로 경력을 발전시킨 프로 우주인이자 공학자이면서 '우주의 시인·철학자'로 불릴 정도로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역사의 무대 뒤편에 있던 3인자가 이후 얼마나 풍요롭고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콜린스는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했을 때 달 궤도상 사령선(command module)에 남아 탐사 대원을 보호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며 관제센터와 교신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아폴로 선장은 암스트롱이고 콜린스가 2인자였지만, 서열 3위인 올드린이 사령선을 단독 조종을 할 경력이 안 돼 콜린스가 남게 됐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착륙선에 옮겨탄 뒤 달 표면에 착륙하는 역사적 순간을 세계 7억 인구가 지켜보며 환호하는 동안 콜린스는 21시간 반 동안 홀로 사령선을 타고 달 궤도를 빙빙 돌았다. 우주선 내 TV가 없어 동료가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도 보지 못했고, 착륙선 엔진 이상이 감지돼 거기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다고 한다.

콜린스는 이때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직접 관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은 공전과 자전 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에선 달의 한쪽 면밖에 보지 못한다. 그가 당시 지구와의 교신마저 끊어진 상태에서 48분간 홀로 달 뒷면을 관측하는 동안 '이곳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나뿐이다'라고 쓴 메모가 뒤늦게 공개됐다. 이 때문에 '태초의 아담 이래 가장 외로웠던 인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폴로 11호 실었던 실물 크기 로켓 영상 - 16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워싱턴 모뉴먼트(Washington Monument)에 로켓 ‘새턴 5호’의 110m 실물 크기 영상이 투영돼 있다. 새턴 5호가 실은 아폴로 11호는 50년 전인 1969년 7월 16일 발사돼 20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했다. /신화 연합뉴스

콜린스는 16일 NYT 인터뷰에서 당시 감정에 대해 "외롭지 않았다. 거기선 내가 사령관이고 왕이었는데? 그동안 커피도 식지 않았었고"라며 웃었다고 한다. 수십년간 두 동료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데 대해서도 "업무 영역이 달랐을 뿐이다. 내가 한 일에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실제 핵심 업무를 해내고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콜린스에게 미안해하던 NASA 측이 이후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 선장직을 제의했지만 "가족에게서 더 이상 멀어지고 싶지 않다"며 이듬해 은퇴했다. 이후 국무부 차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부관장 등을 거치며 계속 경력을 쌓았다. 2014년 별세한 아내와도 해로했다.

한 전문 매체에 따르면 콜린스는 50주년 회견에서 "인간이 우주를 탐사하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고 "나는 잠시 우주선 창에 꽉 찬 지구를 한눈에 봤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 각자의 창으로 세상을 보고, 그 속에서 미래를 만들어가지 않는가"라고 답했다. 우주 탐사가 극소수에게 허락된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성의 발견을 위한 것이란 노(老)우주인의 답에 좌중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또 "영웅이 되지 못해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영웅이 되고 싶으면 병원 응급실 의사가 되어야지"라면서 "우주인은 영웅을 논하는 직업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작은 임무를 완수하는 데 목숨 거는 일"이라고 했다.

아폴로 11호의 3인방은 모두 1930년생 이었다. 달에 다녀온 후 삶은 극명하게 갈렸다. 내성적이었던 암스트롱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유명세 자체를 괴로워했고, 어린 딸이 사고로 사망한 뒤 이혼하고, 심장병을 앓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올드린은 가장 먼저 달에 내리지 못했다는 분노와 열등감 그리고 목표 상실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혼외정사 스캔들과 알코올중독,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재정적 어려움도 겪었다.


조선일보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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