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일본 보상 필요 없다"던 YS 해법이 낫지 않은가

입력 2019.07.18 03:12

진퇴양난인 징용 배상 문제, 金 前 대통령의 93년 방침처럼 예산으로 先지급하면 안 되나
'청구권 협정 서명해 놓고 한국, 계속 추가 요구 내놔' 그런 구차한 말 듣기 싫다

김창균 논설주간

미국 연수 중이던 1993년 초 대학에서 알게 된 일본 유학생과 한·일 과거사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첫 증언이 나오고 1992년 일본군 관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되면서 이 문제가 한·일 간 현안으로 떠오르던 때였다. 유학생이 "한국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물어 왔을 때 묘하게 심사가 뒤틀렸다. "너희는 늘 그래 왔지 않느냐"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고 느꼈다.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얼마 후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일본 측에 요구하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취임 한 달이 채 안 됐던 김 대통령은 "우리가 그런 점에서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할 것"이라며 "우리가 일본에 바라는 것은 진실 규명과 사과뿐"이라고 했다. 일본 유학생과 다시 마주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일본에 돈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새 정부 방침을 전했다. 당당한 기분이었고 솔직히 뿌듯했다. 그러나 "일본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던 YS 방침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유학생과는 소식이 끊겼다. 어디선가 "거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며 필자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꼬일 대로 꼬이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간공동위원회가 "징용 피해자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며 추가 배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2012년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된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뒤집었다. 이에 따라 1인당 8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위자료를 지급하게 된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자산 압류·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소송을 제기한 전체 990명 징용 피해자의 후속 판결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일본 측은 부정하고 있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눈 수출 규제는 그에 대한 보복 조치다. 일본은 탄알을 장전한 채 아직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있다. 무역을 보복 수단으로 무기화한다는 국내외 여론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제안한 '한·일 기업 공동기금'이라는 중재안을 1시간 만에 거부하면서 진전된 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도쿄의 덥고 습한 날씨 속에 양복 정장 차림에 긴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매고 방문한 한국 관리들을 일본 측은 반팔 와이셔츠 노타이 차림으로 맞았다.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 한국 국민이 느끼게 될 불쾌감을 짐작 못 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의 의도된 결례가 한국 국민의 민족 감정에 불을 질러주길 바란 것이다. 그래서 격분한 우리 민병들이 죽창 들고 몰려들면 그걸 신호 삼아 조총 사격을 개시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지금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강제징용 판결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이 준비해놓은 보복 조치의 표적이 된다. 반일(反日)을 국가적 과제로 여기는 정부는 일본이 요구하는 수준의 타협을 굴욕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일본 보상 안 받겠다"던 YS 말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한·일 정부의 적대 기류 속에서 양국 기업이 공동 부담하는 1+1, 거기에 한국 정부까지 포함되는 1+1+1, 그게 변형된 1+1+a 같은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낼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 예산으로 청구권 배상금을 먼저 지급하는 것이 어떤가. 그래서 수출 규제의 빌미가 되는 뇌관을 제거한 뒤 절충은 뒤로 미루는 것이다. 잘되면 좋고 안 되면 우리가 부담을 다 떠안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993년 38조원 규모 예산으로 하겠다고 했던 일을 469조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난 예산으로 감당 못 할 이유가 없다.

배상을 받아내는 것으로 일제의 죄과를 추궁하고 싶은 심정은 모든 국민이 한가지다. 그러나 국제관계는 상대방이 있고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고 명시한 협정문에 한·일 당국자가 공동 서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그 협정문에 다른 토를 다는 것이 한국을 '계약서에 도장 찍어 놓고 자꾸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나라'처럼 만든다.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때 중국이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以德報怨·이덕보원)면서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사례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우리가 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구차한 국민인 것처럼 비쳐야 하나.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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