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경제 안보, 더 흔들리면 곤란하다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9.07.16 18:30

문재인 대통령이 월요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과 아베 총리 발언이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다, "(일본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말을 이어가다 결론처럼 말한다.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둡니다."

문 대통령은 상대국을 향해 ‘경고’라는 말을 썼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전쟁을 치르려는 대통령으로서 선전포고를 앞둔 대(對)국민 담화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자신감에 넘쳐흐르는 국가 지도자의 ‘선전포고 담화문’이라기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은 ‘외교 안보’는 포기한지 오래됐다. 외교 장관은 통역관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청와대 안보 라인은 북한과의 대화 채널마저 찾지 못하고 왕따 당한 지 한참 됐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 ‘경제 안보’마저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물론 한·일 무역 분쟁이 장기화되고 확전되면 일본도 일부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일본 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가.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한 여러 산업의 뿌리 부분 소재에는 일본이 크게 앞서 있다. 대체 불가능한 소재에서도 우리가 불리하다. GNP로 봤을 때 우리 경제는 일본의 3분의 1 규모이다. 정말 한·일 무역이 맞붙으면 일본이 더 크게 다치는가.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그리 말하는가. "우리가 경차(輕車)라면 일본은 덤프트럭이다"는 기술현장 장인들의 비명 소리는 안 들리는가. 문 대통령은 전쟁을 앞두고 우리 전투력이 열세이긴 하지만 국민 사기를 위해 그저 ‘선무(宣撫)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그 틈에 낀 우리 기업과 국민들이 초비상에 걸려 있는데, 오사카 G20 회의에 간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 미국·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어서 괴롭다,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말을 하다니 그 말을 들은 국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렇듯 미·중 무역전쟁도 버거운데, 여기에 덧붙여 대통령이 대일(對日) 무역 선전포고 비슷한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경제 안보를 낭떠러지로 몰아가 한일 분쟁의 확전(擴戰)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고 주먹을 불끈 쥐는 듯한 ‘결기’ 있는 발언을 김정은이 핵실험 도발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고 있을 때 문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었다. 중국이 우리의 사드 배치를 걸고넘어지면서 관광객을 가로막고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들을 박해하고 있을 때 문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었던 발언이다.

그런데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어제 국회 답변에서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려고 여러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자, 문 대통령에 이에 대한 반발로 ‘경고한다’는 담화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저쪽이 옷소매를 뿌리치자 우리 쪽이 발끈한 것인가.

문 대통령은 결코 길지 않은 이번 담화문에서 ‘국제’라는 말을 무려 여섯 번이 썼다. 국제사회, 국제수출통제체제, 국제감시기구 등등이다. 문 대통령은 국제 여론전을 펼치려는 생각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국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어떻게 될까. 질문,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은 누구 탓인가. (1)일본 기업과 아베 총리 탓 (2)대비(對備) 못한 우리 기업 탓 (3)한국 외교부와 외교 라인의 책임 (4)반일 감정을 이용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무책임과 무능 탓 (5)한일 정부 간 조약과 합의를 무효화한 한국 법원의 결정 탓. 이렇게 다섯 문항을 놓고 우리 주변국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어떤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까. 막상 (5)번과 (4)번에 가장 많은 답이 나올까봐 겁이 나서 실시 못 할 것 같다.

그런데 한일 무역 분쟁에 비하면, 너무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어제 담화문에서 첫 문장에 대뜸 이런 말을 했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 관계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릅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 낭중지추(囊中之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대통령 담화문을 작성하는 연설문 작성팀은 알고도 그런 것인가, 모르고 그런 것인가. 좀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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