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기 없는 세상

입력 2019.07.16 03:16
전기는 마술의 에너지다. 전기는 통 같은 것에 담아 저장해둘 필요가 없다. 석탄처럼 난로에 넣고 불을 피울 필요도 없다. 스위치만 누르면 끝이다. 재가 나오지도 않고 오염도 배출되지 않는다. 쓸모는 무궁무진이다. 방을 밝힐 수도, 기계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나오게 할 수도 있다. 난방도 되고 냉방도 된다. 기차처럼 어마어마한 쇳덩어리를 시속 300㎞로 달리게도 한다.

▶'방앗간식 벨트'는 동력을 수십m 전달한다. 전기는 수백㎞ 떨어진 곳까지 광범위하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걸 위해 발전소들이 고리(loop) 형태로 전력 공급망(網)을 형성한다. 발전소 하나가 고장 나도 다른 발전소가 그걸 대체한다. 그럴 경우에 대비해 출력을 일부러 95%만 내는 발전소들이 있다. 문제는 전력 공급이 간신히 소비를 충당해 여유가 없는 상태에선, 일부 발전소가 고장 나거나 태양광·풍력 발전기가 가동을 멈출 경우 연결 발전소까지 연쇄적으로 멈춰 설 수 있다는 점이다. 

▶2011년 9월 순환단전(斷電)은 그런 블랙아웃을 피하려고 전력 당국이 일부러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기 공급을 끊은 경우였다. 그때 전국 162만 가구가 '전기 없는 30분'을 겪었다. 신호등이 꺼져 자동차들이 엉켰고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가 944건 접수됐다. 13일의 뉴욕 정전 사태는 블랙아웃형(型)은 아니었다. 변압기 화재로 말단 전기 공급이 끊기는 지역 정전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맨해튼이었던 탓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세상은 점점 더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습기가 많은 날은 제습기를, 습기가 부족한 날은 가습기를 튼다. 미세 먼지 많다고 공기청정기도 돌려야 한다. 머지않아 도로에 석유차는 없고 전기차만 다닐 수도 있다. 4차 산업시대의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도 전기가 끊기면 고철이나 플라스틱 덩어리일 뿐이다.

▶전기는 공급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전력 공급이 불규칙한 풍력·태양광에 1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2016년 9월 28~29일 남호주에서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주민 절반인 170만 가구가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당시 남호주는 신재생 확대 정책으로 풍력이 전력 공급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폭우로 전력망 일부가 손상된 상황에서 바람이 잦아들어 풍력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정전이 발생했다. 호주 정부는 다음해인 2017년 신재생 확대 전략 포기를 선언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에너지 정책이 '전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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