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기습 키스' 사건의 전말

박국희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7.16 03:12
박국희 사회부 기자
KBS 파견직 행정 직원이던 A(34)씨는 2014년 KBS 촬영기자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A씨는 5년 만인 최근에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로 상대 남성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무고녀'로 실형을 받을 뻔했던 A씨가 가까스로 유죄를 면했을 뿐이다. 남성은 KBS에서 아무 징계도 받지 않고 근무 중이다. A씨는 사건 직후 회사를 그만뒀다.

A씨는 입사 한 달 무렵 유부남 촬영기자로부터 회식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가보니 단둘이 술 마시는 자리였다. 그날 강제 키스를 당했다. 형사 고소를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이후 오히려 남성으로부터 무고 혐의로 역고소를 당했다.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단둘이서 4시간씩 술을 마신 것은 호감을 가진 것 아니냐"는 이유 등으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를 무죄로 돌려놓은 것에 불과했다.

남성은 기세등등했다. 언론 취재에 "대법원까지 유죄를 인정하면 A씨는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데 이어 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민사 소송도 냈다. 대출을 받아 변호사 비용을 치른 A씨는 여성가족부로부터 법률 지원을 받았다. 남성은 여가부에 "무고로 실형을 선고받은 A씨에게 자금 지원을 해줘도 되느냐"고 항의했다. 감사원에 신고도 했다.

사건 보고를 받은 KBS는 촬영기자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았다. A씨가 제기한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였다. KBS는 남성이 A씨에게 사과하는 자리만 마련해 줬다. 남성은 "당시 경황도 없었고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과했다"고 말했다. A씨 사건이 알려지자, 이 남성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 B씨가 나왔다. B씨도 KBS 파견직이었다. B씨는 민사소송을 내고 남성으로부터 위자료 600만원을 받았다. KBS는 B씨 사건에 대해서도 시효가 지났다며 촬영기자를 징계하지 않았다.

A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 왔다. 2006년 고시원에서 잠을 자다 방에 몰래 들어온 다른 입주자에게 성추행당한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 그때도 남성은 처벌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해자에게 300만원을 받고 합의를 해줬다. 익명 뒤에 숨어 있으면 이번 일도 없었던 사실이 될까 봐 두려웠다.

오늘도 여성들은 지하철을 타면 몰카를 걱정하고, 내 집에서 잠을 자도 성폭행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며 산다. 연예인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꽃뱀' 아니냐"는 댓글이 달린다. A씨 사건 역시 KBS라는 공영방송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도 남성은 당당하고, 여성이 무고죄로 처벌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현실만 새삼 일깨워 줄 뿐이다.


조선일보 A30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