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문 정부의 국가 경영 능력 한계에

입력 2019.07.16 03:17

日 보복 조치, 美日 합작품일 가능성… '국채보상운동' '동학의 죽창가' 일본이 아파할 급소 아냐
'플랜 B' 안 보이는 문 정부 국정… 외교·국방·언론, 이념의 도구일 뿐 이 땅에 무엇을 이루려 하나

김대중 고문
일본의 경제 보복, 한·미 공조의 균열, 안면 몰수식 대북 저자세, 경제의 추락 등 일련의 대내외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경영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문 정부는 이 국가적 과제들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당황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미·일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개월여 사이에 아베는 트럼프를 세 번 만났다. 여기서 아베는 '반일을 부추기는' 문 대통령에게 제동을 거는 경제 제재 얘기를 꺼냈고 트럼프는 대북 제재 해제에만 매달리면서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요구를 비켜 가는 문 정부에 경고(?)할 필요성에 공감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측의 노력과 호소에도 미국 정부는 한·일 교착에 개입하거나 중재할 의도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점, 일본의 보복 조치가 판문점 회담을 마친 트럼프의 비행기가 한국 땅을 떠난 직후 발표된 타이밍 등은 트럼프와 아베의 '짜고 치는 고스톱'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들(예를 들면 대륙 견제를 위한 해상 방어 구축, 주한 미군 방위비 증강)에는 미적거리거나 중국 눈치를 보면서 대북 제재 해제에는 귀찮을 정도로 매달리고 있는 문 정부를 못마땅히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마침내 일본이 이 틈새에 끼어들어 '문재인 손보기'를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것은 우리에게는 일본이 아파할 급소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꺼내 든 것이 '이순신의 배 12척'이고 '국채보상운동'이고 '동학의 죽창가'이고 그리고 어이없게도 외환 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 수준이다. 그런 것은 우리 국민의 정신 차리기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일본이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G20 회의에서 어느 나라 정상들을 만났는가를 보면 우리 외교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일, 한·미 관계가 막중한 전환점에서 오락가락하는데 외교장관을 아프리카에 보내는, 또 일본을 제대로 아는 참모를 동원하기는커녕 당장 주미·주일 대사관의 외교 기능조차 마비시킨 오늘의 실정은 한국 외교가 바닥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 정부의 국가 운영이 부실하다는 또 다른 증좌는 문 대통령에게는 '플랜 B'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북한'과 '평화'만 존재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국토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플랜 B는 언급한 적이 없다. 군(軍)이 찌그러져 가는 나라에 플랜 B가 있을 수 없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는 최근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문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경영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족의 시각으로는 국가의 문제를 풀지 못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다." "우리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국가들과는 다 등을 돌리고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북한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만 굽실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실상 두 쪽이 났다. 좌우 간의 첨예한 전쟁판이 벌어지고 있다. 유튜브나 댓글에 들어가 보면 이것은 비난 수준이 아니라 욕설 판이다. 우리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난도질을 가하고 있다. 언론도 양분돼 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절 언론은 본질적으로 권력에 비판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못 써도 저 신문의 비판 용기가 부럽다'는 식이었다. 지금은 언론끼리 싸운다. 옳고 그름, 사실과 왜곡의 문제라면 탓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념적 분화가 권력적, 출세욕적 상황과 맞물린 것이라면 70년 한국 언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문 정부는 과연 무엇을 이 땅에 이루려 하는가? 거꾸로 가는 소득 재분배, 포퓰리스트적 환경 정책, 기업도 노조도 반대하는 어정쩡한 노동 정책, '민족'을 앞세운 평화 프로세스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를 양분한 이념 전쟁―이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 있다면 기존 질서와 관념과 관점을 뒤집고 뒤흔들어놓은 것뿐이다. 그래서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고 말았다. 외교도, 국방도 이념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는 자기들이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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