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강대강 맞서면 아베 선거 도와주는 꼴"

노석조 기자
입력 2019.07.12 03:12 수정 2019.07.12 11:08

[한일 외교 원로에게 듣는다] [6] 유흥수 前 주일대사

유흥수(82) 전 주일(駐日) 대사는 10일 "우리 정부가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 정면으로 맞서며 '강대강' 전략을 펴고 있는데, 되레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를 도와주는 셈이 된다"며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며 긴장 국면을 '쿨 다운(진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유 전 대사는 이날 서울 여의도 한일친선협회중앙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은 앞날을 생각해 반일(反日) 여론 등 정치적 부담도 무릅쓰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의 대일(對日) 외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흥수 전 주일 대사가 10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강대강' 전략을 펴면 아베 총리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했다. /조인원 기자
현재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인 그는 DJ·노무현 정부 시절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이다. 과거 아베 총리와 부친(아베 신타로 전 외상)을 부산으로 불러 폭탄주를 마실 정도로 일본 내 인맥이 두텁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됐던 2014년 8월 주일 대사로 부임해 청와대와 도쿄 총리 관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의 주역이다.

―DJ의 대일본 외교는 어땠나?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본 정치인들은 강경 외교가 나올 것이라 우려했다. 그가 유신 시절 납치됐던 곳이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DJ는 한·일 문화 개방을 추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는 DJ보다 더한 실리 외교를 폈다. 지지층으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미국·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힘을 쏟았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한·미·일 공조'가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노 대통령은 야당 의원인 내가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총리 등 일본 요인들을 소개해주자 다 만났다. 문 대통령이 일본 정치인들을 만났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현 정부도 일본에 외교 차관 보냈는데.

"관료끼리의 만남은 한계가 있다. 일본은 내각책임제이다. 의원들이 국정을 주무른다. 우리 정치인들이 제대로 나서서 일본 정치권의 '공기'를 바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베와 사이 나빴다.

"박 대통령이 나를 대사로 보내기 전 청와대로 불러 이렇게 말하더라. '아베한테 위안부 문제 사과 못 받아내면 정상회담도 없는 거예요.' 그런 그를 설득하고 일측과 협상해 만든 게 2015년 위안부 합의다. 부족한 점도 있지만, 아베 총리가 사죄의 주체를 '총리대신'이라고 처음으로 밝히는 등 진일보한 합의였다. 현 정부가 이를 무력화하기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처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갈등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정부끼리 싸워도 별 영향 받지 않던 국민 감정이 최근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우리 쪽에서도 일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면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인, 언론부터 냉정을 찾아야 한다. 나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양국 거물급 정치인을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소개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문 정부도 이런 계기를 잡아야 한다."

―아베 총리는 왜 강공으로 나오나?

"옛날에 그와 그의 아버지를 부산으로 불러 폭탄주를 마신 적이 있다. 그는 한국어도 꽤 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2007년 총리직에서 잠깐 물러났을 때 한국인 친구의 병문안을 온 적도 있다. 미국 눈치를 많이 보는 그가 이렇게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하는 건 나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심상치 않은 일이다."

―문 대통령이 특사 제안을 한다면?

"국익엔 좌우, 여야가 없다. 얼어붙은 한·일 사이를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조선일보 A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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