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맹국에 '호르무즈 파병' 요구

도쿄=이하원 특파원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김경화 기자 양승식 기자
입력 2019.07.12 01:32

원유수송 보호 명분 軍연합체

미국이 이란 앞바다를 항행하는 민간 선박 보호를 명분으로 추진 중인 동맹국과의 군(軍) 연합체 결성에 일본이 협력해 줄 것을 타진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중동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이 지역 안보 위험이 커지자, 해협을 이용하는 다른 동맹국들에 '해상 보안'을 거들라고 요구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날 "아직 참여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조만간 미국으로부터 '안보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미국의 파병 요청을 받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부 부(副)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이 밀접한 의견 교환을 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본은 자위대 파견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駐日미군 사령관 이취임식이미지 크게보기
駐日미군 사령관 이취임식 - 일본 요코스카의 미 해군 기지에서 10일 열린 주요 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전임, 신임 미 해군 사령관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호르무즈해협 등 이란 앞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보호를 이유로 일본에 파병을 요구했고, 일본은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UPI 연합뉴스
우리 외교 당국과 국방부는 "미측으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 10일(현지 시각) 미국을 찾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 국장도 이날 워싱턴에 도착했다. 김 차장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백악관과 상·하원 (인사들을) 다양하게 만나서 한·미 간 이슈를 논의할 게 많아 출장을 왔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한·미 간 공조를 논의하고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김 차장이 미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과의 대치 국면에서 미측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주된 임무지만, 뜻밖의 '안보 청구서'를 받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원유 공급에도 호르무즈해협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미측의 파병 요청이 올 경우 거절하기 어렵다"며 "생각지도 않은 대형 외교 난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 외의 동맹국들에도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커 동참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일 갈등과 북한 비핵화 문제 등 외교 현안에서 미국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우리로선 파병 제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동의 등 국민 설득 과정이 필요한 파병 이슈가 등장한 것도 부담이다.

◇동맹국에 '안보 청구서' 내민 美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동맹국에도 군 연합체에 협력하라는 제안을 했고 앞으로 수주 내에 참가국을 결정할 방침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연합체는 미국 함선이 현지에서 경계 활동을 지휘하고, 참가국이 미 함선과 자국의 민간 선박을 호위하는 시스템이다.

아베 내각은 2015년 미국이 위험에 처할 경우 일본이 함께 반격에 나서는 개념인 집단적 자위권을 도입한 바 있어 미국의 제안을 적극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그런 이니셔티브(계획)를 갖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며 "외교 경로를 통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전달받지 않았다"고 했다. 국방부도 "미측으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조만간 연합군 참여를 공식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조셉 던퍼드 미 합참의장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우리는 호르무즈와 바브 엘 만데브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할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나라와 협력 중"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트위터에 "왜 우리가 수년 동안 다른 나라를 위해 (원유 수송) 해로를 아무런 보상 없이 보호하고 있나"라고 썼다.

◇파병 거부 어려운데… 반대 정서가 부담

정부도 미측이 파병을 공식 요청할 경우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70% 수준이다. 미국이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군 연합체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관련 부처 회의에서 이미 수입선 다변화와 다국적 호송 체계 구축 등의 대안이 거론됐다"며 "에너지 안보가 달린 문제라서 파병 요청이 있다면 '허들'이 높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경우는 다르지만 '해적'에 대한 경비 목적으로 청해부대도 파견돼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파병' 자체에 대한 여권 지지층의 반대 정서가 부담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라크 파병 문제는 국론 분열과 정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 더욱이 일본이 자위대 파견을 결정할 경우 우리 함대가 욱일기를 내건 해상자위대와 함께 순찰을 해야 한다는 것도 정치적 부담이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 '내 편에 서라'는 차원에서 참여를 요청할 수 있다"며 "'석유 보급선 확보'라는 충분한 명분이 있으므로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달려갔지만… 美 "양국이 해결"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차단에 사활을 걸고 있다. 10일(현지 시각) 미국을 찾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과 면담했다. 다음날에는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 등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출장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설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원 외교위원들은 이날 "한·일 갈등은 자체 해결이 우선"이란 입장을 잇달아 밝혔다. 제임스 리시 상원외교위원장은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한·일 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당)도 "(한·일 갈등은) 언젠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한·일 간 중재역'을 당장 떠맡을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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