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 다시 미궁에 빠지나

제주=오재용 기자
입력 2019.07.12 03:01

10년 전 보육교사 살해사건 택시기사였던 피의자 1심 무죄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10년 만에 법정에 섰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1일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5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피해자와 피의자의 옷 실오라기, 방범카메라 영상 등 증거는 사건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되지만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한 피 묻은 박씨의 청바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세·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제주시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피해자 이씨의 시신에 범인의 DNA가 없었고, 자백이나 목격자 진술 등 직접 증거가 없었다. 박씨는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다른 지역을 떠돌며 생활해왔다.

2016년 2월 경찰은 장기 미제 전담팀을 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경찰이 사건 당시 시체 상태와 기후 조건까지 맞춰 동물 실험을 진행한 결과 이씨가 실종 당일 기준 24시간 이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범행 동선에서 박씨의 차량이 찍힌 방범카메라 영상을 보정했다. 영상 속 노란색 캡이 달린 NF쏘나타 택시 동선을 재분석한 결과 조건에 맞는 택시는 제주 지역에서 18대뿐이었다. 다른 경우의 수까지 모두 충족하는 택시는 박씨의 차량뿐이라는 것이 수사 당국의 판단이었다. 경찰은 박씨의 택시 운전석과 좌석, 트렁크 등과 옷에서 A씨가 사망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실오라기를 다량 발견하는 등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은 또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찾았다. 이를 토대로 수사 당국은 두 사람 간 격렬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이런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해 5월 박씨를 체포했고, 검찰은 지난 1월 박씨를 구속 기소했다.


조선일보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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