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반에 미쳐 10년째 두집 살림… "판소리史 쓰는 게 꿈"

김성현 기자
입력 2019.07.12 03:01

'유성기 음반 문화사' 펴낸 배연형

유성기 음반과 판소리 연구자인 배연형(62)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은 서울 광진구 아파트 단지의 옆 동으로 10여년째 '출근'하고 있다. 그의 아파트 10동은 가족과 함께 사는 살림집이다. 바로 옆의 3동은 유성기 음반과 책으로 가득한 자료실이자 서재로 쓴다. 발명왕 에디슨의 실린더 유성기부터 지난해 온라인으로 구입한 영국산(産) 유성기까지 모두 5대가 있다. 국내외 유성기 음반 2500여장, LP 음반 1000여장, CD 5000여장도 집 한 채를 뒤덮다시피 했다. "음반 때문에 걸으면 5분, 달려가면 1분 거리에 집 하나를 더 얻었으니 집사람이 당연히 싫어하죠(웃음)."

유성기 음반의 나팔통을 귀에 대는 자세를 취한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 그가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1891~1948)의 옛 음반을 틀어주자 '음악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 /이진한 기자
배 소장이 최근 '한국 유성기 음반 문화사'(지성사)를 펴냈다. 유성기는 바늘이 진동판을 떨리게 해서 소리를 만든 뒤 나팔통을 통해 증폭시키는 구식 오디오를 뜻한다. 이 책에서 배 소장은 대한제국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성기 음반의 도입과 확산 과정을 살피고 일제의 검열 문제도 다뤘다. '유성기 음반을 통해서 본 한국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1906년 취입한 한국 최초의 음반인 '유산가(遊山歌)'부터 월남 이상재 선생의 1926년 '조선 청년에게' 연설 등 직접 발굴한 희귀 음원도 부록으로 실었다.

1930년대 노골적인 성적(性的) 표현으로 일제의 압수 처분을 받았던 서도 잡가 '사설 난봉가' 음원도 담겨 있다. "처녀 총각이 단둘이 모여 죽을지 살지, 살지 죽을지, 우리가 요렇게 놀다가 아이나 들면 어찌하나"라는 노랫말은 지금 들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거침없다. 배 소장은 "1930년대 유성기 음반의 영향력이 높아지자 일제는 퇴폐 풍조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면서 "그 과정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아리랑' 같은 노래도 함께 금지하고 압수했다"고 말했다.

배 소장은 아마추어 국악 애호가에서 전문 연구가로 들어선 경우다. 동국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1979년부터 25년간 중·고교에서 국어 교사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초 국립극장에서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완창을 처음 들은 뒤 국악의 재미에 빠졌다. "박동진 명창의 너스레와 재담에 '웃다가 배 아프다'는 말이 실감 났어요. 그때부터 옆길로 샌 거죠."

퇴근하거나 주말이면 황학동 벼룩시장을 찾아가 유성기 음반을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1988년 '판소리 5명창' 복각 음반(LP)도 펴냈다. 이 음반을 들고서 민속악 연구의 개척자인 이보형(2009년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선생을 찾아갔다. 이보형 선생은 배 소장에게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도리어 물귀신이 되고만 경우"라며 농반진반의 덕담을 건넸다.

배 소장이 1983년 석사 논문을 쓸 당시에는 신라 최치원의 한문학이 주제였다. 하지만 2005년 박사 학위를 쓸 때는 주제도 '판소리 소리책 연구'로 달라졌다. 이 논문에서 그는 '판소리는 남도에서 태어났다'는 통설과 달리 "경기·충청도의 판소리가 남도 지방으로 확산된 것"이라는 파격적 주장으로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논문은 80여편. 본업과 부업이 바뀐 셈이다.

앞으로는 음반을 통해서 한국 판소리의 근현대사를 정리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배 소장은 12일 오후 7시 서울 장충동 '문화살롱 기룬'에서 유성기 음반에 녹음된 음원들을 전문 연주자들이 직접 복원 연주하는 음악회를 연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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