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박차고 나온 한국 애니메이터, 국내파와 손잡다

황지윤 기자
입력 2019.07.12 03:01

'레드슈즈' 제작 김상진·홍성호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인 줄로만 알았다. 엔딩 크레디트에 뜨는 한국인 이름을 보고 그제야 '메이드 인 코리아' 국산 애니메이션임을 알았다.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 로커스 스튜디오 사무실에서 홍성호(오른쪽) 총감독과 김상진 감독이 국산 3D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작업 당시 그린 그림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장련성 기자
오는 25일 개봉하는 '레드슈즈'〈아래 사진〉는 국내 제작사 '로커스 스튜디오'에서 만든 3D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착안해 이야기를 새롭게 비틀었다. 마법의 빨간 구두를 신고 미인이 된 스노우와 저주를 받아 초록 난쟁이로 변해 버린 일곱 왕자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미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주토피아' '라푼젤' '모아나' 등의 캐릭터를 만든 김상진(60) 캐릭터 수퍼바이저와 '원더풀데이즈' 같은 감각적인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홍성호(53) 감독이 의기투합해 완성했다. 순수 국내 인력과 자본으로 디즈니와도 견줄 만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11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홍성호 총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익숙한 스타일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디즈니 짝퉁'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레드슈즈'는 상업 영화니까요." 김 감독은 "디즈니에서 20년간 일한 제게 연락했을 때 전혀 다른 스타일을 기대한 건 아니었겠죠"라고도 덧붙였다.

/싸이더스
홍성호 감독은 CG 아티스트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광고 회사에서 일할 땐 작업당 단가도 높고, 제작비도 많이 받아 경제적으론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남의 일'이잖아요. 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1995년 '토이 스토리'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엔 '원더풀데이즈' CG 감독으로 참여했다. 2007년부터 '레드슈즈' 시놉시스를 썼고,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5년 투자자를 찾아 본격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김상진 감독이 디즈니를 관두고 팀에 합류한 것도 이 무렵이다.

김상진 감독은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라는 수식어로 불려온 인물.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 보조 애니메이터로 일하다 캐나다로 건너갔고,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미국 디즈니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았다. 남들은 그의 커리어를 부러워했지만 김 감독은 "20년간 한곳에만 있다 보니 좀이 쑤셨다"고 했다.

"앞으로 몇 년간 디즈니에서 해야 할 작업 리스트를 살펴보니 '주먹왕 랄프 2' '겨울왕국 2' 같은 시리즈물뿐이었어요. 이미 캐릭터나 설정은 다 잡혀 있는 작업을 하는 것보단 새로운 모험을 해보고 싶어졌죠." 2016년 과감히 디즈니를 나왔고, '레드슈즈'팀에 합류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애니메이터들과 모국어로 자유롭게 일하고픈 욕구가 계속 있었어요. 덕분에 그 갈증을 해소했죠."

홍 감독은 "'레드슈즈'는 시나리오 기획에서부터 끝까지 한국인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계속 디즈니·픽사·드림웍스처럼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내놓고 싶어요. 마치 픽사에 스티브 잡스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비전을 알아줄 파트너를 만난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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