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이렇게 정겨운 '견묘지간'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입력 2019.07.12 03:13 수정 2019.07.12 18:18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요즘은 강원도 평창 대화면 큰항아리골에 공동체를 세우는 중이라서 반은 서울을 떠나 깊은 산중에서 보낸다. 이곳은 해발 700m 산정이 커다란 항아리처럼 생겼다 하여 화전민들이 오래전부터 큰항아리골이라 하였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숲은 우거지고, 하늘은 높푸르고 흰 구름이 끝없이 수를 놓지만, 항아리 속같이 고요하기만 한 평화로운 곳이다. 한자 표기로는 개수리(介水里)라 하여, 하늘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70리길 금당계곡에서 일어난 산안개와 구름이 골짜기로 찾아들어 바람 따라 산정에 이른 후 비가 되어 흘러내린다. 그래서 산정부터 물이 넘친다.

이 골짜기엔 하얀 긴 털을 가진 큰 개가 살고 있다. 반달곰처럼 생겼다 하여 달곰이라고 불린다. 커다란 맹도견보다 크지만 얼굴을 보면 '어떻게 저토록 선하게 생겼을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작은 귀여운 개가 있는데, 얼마나 영리한지 사람과 의사소통이 될 만큼 똘똘하여 똘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산다. 호기심이 많아 물에 비친 구름과 올챙이, 개구리들과 장난을 치며 놀기도 한다. 그리고 매력적인 눈빛을 가지고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듯 고고한 척 살아가는 몽룡이라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 산속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밥 먹을 때나 양지바른 곳이 필요할 때만 마당에 나타나곤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세 마리의 동물들이 한 마당 안에서 사이 좋게 어울려 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질도, 생김새도, 종자도 다른 것(?)들이 말이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는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한다 하여 앙숙처럼 지내는 사이를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 불러왔지만!

/일러스트=이철원
똘똘이와 고양이는 추운 날에는 비좁은 박스 안에서 서로 붙어서 한 몸처럼 잠을 잔다. 자연을 정글이라 하고, 그 정글의 법칙은 먹고 먹히는 투쟁의 원리가 지배한다고 사람들은 믿지만, 과연 그러한 것일까? 이 골짜기 미물들(?) 간의 사이 좋은 공존의 비법은 무엇일까? 일단은 넓은 자연의 공간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달곰이는 답답하여 집을 나가면 1박 2일, 2박 3일은 골짜기와 산정을 배회하며 돌아다니다 환한 얼굴로 돌아온다. 골짜기와 산정 20리 범위는 자기가 제왕이다. 똘이 역시 10리 길은 호기심에 개구리나 나비 따라, 때로는 하늘을 보고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쏘다니다 돌아와서 사람 품에 안긴다. 몽룡이는 아침이면 아예 사람 없는 곳으로 사라져 뒷산 산책 길 바위 곁에 앉아 있다가 해 질 녘 밥 먹을 때나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한 마당 한 집에서 견묘지간임에도 평화롭게 밤을 보내곤 한다. 이것이 자연의 공간을 즐기는 동물들의 영성학이라 하리라. 이는 자연을 정복하여 스마트한 고층 빌딩과 고속화 도로를 만들고, 과열된 가슴으로 과속으로 질주하는 오늘의 인간사에 큰 교훈을 던지고 있다.

하늘이 높푸르고 구름이 국경 없이 네 땅 내 땅 없이 넘나들고, 골짜기엔 안개가 피었다 지고, 종일 물이 흘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수없이 많은 생명들과 숲을 살리고 있는 이 자연의 공간! 달곰이가 숲에서 돌아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이내 똘이가 달려들어 달곰이에게 덤벼든다. 그러면 달곰이는 똘이한테 밀려 자리를 내주고 만다. 강자의 관용이란 이런 것일까! 달곰이를 기르다 내게 맡긴 목사님은 달곰이를 성자라고 불렀다. 어제 달곰이는 자기 골짜기 영역을 침범한 커다란 멧돼지를 몰아내려고 혼자 싸웠다. 마침내 그들을 몰아내고 코에 영광의 상처를 입었다. 오늘 아침 신문을 통해 승패를 겨루는 인간 동네 스토리를 읽다가 불현듯 진정한 제왕의 모습을 달곰이에게서 본다.


조선일보 A29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