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30명이 '3분 스피치'… 뭐든 말하라 하니 "벤처에 적극투자"

신은진 기자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7.11 01:45

[일본의 경제보복]
삼성·SK "반도체 어려움 가중… 최선 다할테니 정부도 도와달라"
롯데 "사드 겪어보니 해결 힘들어"… 일부 참석자 "러시아와 협력"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30대 기업 총수들과 가진 청와대 간담회에서도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지만 '외교적 해결책'이 뭔지는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재·부품 국산화' '수입처 다변화' 등 이미 나온 장기 대책만 되풀이됐다. 참석한 기업인들 사이에선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기업인 발언 시간도 '1인당 3분'으로 제한됐다. 사회를 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분이 지나면 (1분이 남았다는) 사인을 드리겠다"고 했다. 실제로 1분 알림 팻말을 들었다. 이 때문에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한 30대 그룹 간담회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이미지 크게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한 30대 그룹 간담회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 부회장, 문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허창수 GS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발언하지 않자 여러 차례 "하실 말씀 없으시냐"고 했다. 자산 순위로 초청 기업을 정하다 보니 이번 조치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권 CEO들도 참석했다. 그중 한 명은 일본 사태와 무관하게 "벤처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 기분을 맞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본 수출 규제의 직접 대상인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은데 일본 사태로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기업도 최선을 다할 테니 정부에서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한·일 분쟁이 외교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주 무역협회 회장은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춰 서는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일본 갈등을 풀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靑정책실장 "발언시간 1분 남았어요" - 김상조(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이 10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에게 발언 시간을 지켜 달라며 '1분' 남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 실장 옆은 백복인 KT&G 사장이다. /뉴시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은 "아직 호텔·여행사 등에 대한 (일본의 보복) 움직임은 없지만, 한·일 간 대치 상황이 장기화되면 영향이 생길 것"이라며 "사드 문제로 우리가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겪어 봤지만 경제 외적인 문제가 연관돼 있다 보니 깨끗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 투자, 고용 악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한 기업인은 "이번 사태로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돼선 안 된다. 이 사태를 이성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은 "자동차 특수 부품은 일본에 의존하는 것이 많고 수소전기차 같은 것은 일본 부품이 없으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본 의존도를 줄이고 앞으로 소재 수입처를 다변화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참석자는 "우리(기업)는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거나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소재 부품도 품질 기준이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이번 대응책으로 '부품 국산화'를 내놨지만 일본 수준을 따라잡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일부 기업인은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며 "화학 분야에 강점이 있는 러시아·독일과도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기술 협력이 현실성과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 차원에서 다변화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간담회는 낮 12시 30분에 끝났고 오찬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급한 상황인 만큼 기업인들의 시간을 뺏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 점심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야당은 청와대와 정부의 뒤늦은 대응을 질타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무역 보복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예견된 문제인데 정부가 8개월을 방관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했다. 같은 당 윤한홍 의원은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에 대해서도 "WTO 제소는 항소와 상소까지 하면 (15개월에서) 2~3년이 더 걸린다"며 "당장 문제가 발생했는데, 무대책을 대책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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