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영화 & 역사] '유신삼걸'두 절친… 결국 서로에게 칼끝을 겨눴다

남정욱 작가
입력 2019.07.11 03:11

'라스트 사무라이'

남정욱 작가
그 배는 검었다. 콜타르로 도장한 덕분에 구로후네(黑船)라고 부른 배 네 척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쇄국 200년 일본의 긴 잠을 깨웠다. 166년 전 딱 이맘때인 1853년 7월 8일 일이다. 숫자만 보고 '겨우' 네 척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휘관인 페리 제독이 타고 있던 기함은 2500t, 그 옆의 순양함은 1700t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제일 큰 배가 100t 규모였으니 일본인들이 느낀 시각적 충격은 외계 문명과 조우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페리 제독의 내항은 메이지 유신을 촉발했고 이후 20년 동안 일본은 격렬한 정권 투쟁과 내전에 말려들어 간다. 신(神)은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인재를 쏟아붓는 경향이 있다. 그 시기 약속이나 한 듯 수많은 인재가 쏟아져 나왔고 이들은 마치 짠 것처럼 제 할 일을 마치고는 역사에 조용히 자기 이름을 묻었다. 그 마지막 주자가 사무라이의 본향,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다. 한동네에서 살았고 막상막하로 가난했고 말 그대로 콩 한 쪽을 쪼개 먹던 둘은 나중에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만나 그 인연을 정리한다. 2004년 개봉한 '라스트 사무라이'는 이 둘이 격돌한 세이난(西南)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내용은 단순하다. 정부군의 훈련 교관이었던 미군 중위(톰 크루즈)가 반란군에게 생포되어 사무라이 문화에 빠진 끝에 아예 사무라이 갑옷을 걸치고 반란군의 선봉에 선다는 얘기인데 평가는 극단이다. 최고의 전쟁 영화라는 사람도 있고 일본 귀족 문화에 반한 미국 '쌍놈' 이야기라는 악평도 있다. 영상은 아름답다. 총과 대포로 무장한 정부군을 향해 말을 타고 돌진하는 반란군의 장려한 낙일(落日)은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벚꽃 엔딩처럼 애잔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게 정부군의 절도 있는 행군 모습이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인들은 현대인처럼 걷지 않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시대물을 보면 사람들이 발로 땅을 스치듯 흐느적거리며 걷는 모습이 나온다. '난바'라고 하는 이 걸음걸이는 진흙탕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동작이 일상화한 것으로, 오른발이 나갈 때 오른쪽 상반신이 앞으로 나가고 왼발이 나갈 때는 왼쪽 상반신이 나가는 식이다. 이 걸음걸이로는 군대의 행진이 절대 불가능하다. 해서 새로운 걸음걸이를 만드는 것이 메이지 정부의 절실한 과제였다. 여기에 답을 준 게 1871년의 이와쿠라 시찰단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새 정부를 세웠지만 메이지 정부에 구체적인 국가 발전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세계 최고만을 보고 오겠다는 신념으로 급하게 시찰단을 꾸렸고 이들은 무려 22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12국을 돌며 서구 문명의 정수를 체험한다. 시찰 결과로 얻은 게 두 가지다. 하나는 최대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러시아가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 최강국이었던 프랑스 대신 독일 제국을 일본의 발전 모델로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1871년이 독일 제국 탄생 원년이라 시끌벅적 화려했고 프랑스는 파리 코뮌으로 뒤숭숭해 그런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일본인들의 지력을 너무 낮춰 보는 동시에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잘 몰라 하는 소리다.

발음이 세서 전통 강국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통일 전 프로이센은 약체 중 약체였다. 위치도 최악이었다. 위로는 스웨덴,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러시아, 서쪽으로는 프랑스, 그리고 밑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이센은 그야말로 살기 위해 외교와 군사력 증강에 발버둥쳐야 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게 개혁 군주 프리드리히 1세다. 돈이 없었던 프로이센은 포병과 기병 대신 보병에 집중했다. 보병 훈련의 달인인 안할트 공국의 영주 레오폴드를 모셔왔고, 이 사람은 무지막지한 제식훈련을 통해 프로이센 보병을 유럽 최강으로 올려놓는다. 사정이 별반 다를 게 없던 일본이 롤모델로 프로이센을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염원대로 일본은 얼마 후 아시아의 프로이센이 되었고, 힘이 생긴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던 것처럼 조선과 청나라를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정한론을 부르짖던 일본의 칼끝이 150년 만에 또다시 한반도를 겨누고 있다. 같은 칼에 두 번 찔리면 그때부터는 찔린 사람 책임이다. 감정적 대응은 잠시 미뤄놓고 제대로 일본 공부를 할 때다. 나를 잘 아는 상대보다 무서운 적은 없다.


조선일보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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