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난 젊은 친구들 '앞잡이' 되련다… 기형적 존재 '586 운동권' 밀어내도록"

입력 2019.07.08 03:13

좌파 이데올로그의 변신…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민노당 전 정책위의장이었던 주대환(65)씨는 그 나이에 백팩을 메고 나왔다.

"나는 민노당을 떠난 뒤로 친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친구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20·30대 친구들을 사귀었다.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다. 나는 이들의 '앞잡이'가 되려고 한다. 이들이 한국 사회의 암(癌) 같은 존재인 '586 운동권'을 밀어내고 올라올 수 있게 돕고 싶다."

얼마 전 그는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바른미래당 자체에 관심이 덜해서인지 별로 뉴스는 안 됐다. 하지만 젊은 날 4차례나 구속되고 지하 노동 조직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을 이끄는 등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꾼 그 개인으로 보면 놀라운 인생 반전이다.

주대환씨는 “민노총을 보면 ‘내 청춘 노동운동에 바쳤던 결과가 이런가’ 하는 회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대환씨는 “민노총을 보면 ‘내 청춘 노동운동에 바쳤던 결과가 이런가’ 하는 회한이 있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주 선생이 맡은 혁신위원회는 퇴진 압박을 받아온 손학규 대표가 타협안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자문 기구에 불과하고 실질적 권한도 없다. 그런데도 이를 수락한 것은 늦은 나이의 자리 욕심 말고는 달리 설명될 수 있겠나?

"보수(保守)가 이기려면 '태극기 부대'로는 안 되고 호남과 청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 바른미래당 혁신위원 7명을 모두 40세 이하로 구성했다. 어느 정당이든 주된 지지층이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60~70대, 민주당은 40~50대 정서에 맞추고 있다면, 나는 바른미래당을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의 정서에 맞는 당으로 바꿔볼 작정이다."

―20·30대 정서가 어떤지를 정확히 알고는 있나?

"이들은 부모 세대의 경제력 덕분으로 선진국의 제도와 문화를 체화했다. 글로벌 감각을 갖고 있다. 가령 법질서를 무시하는 민노총의 행태는 이 친구들 눈에는 '저 아저씨들은 왜 저럴까'로 비칠 뿐이다. 깡패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일본·미국 등에 콤플렉스가 없다. 현 정권이 부추겨 온 '반일 민족주의'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주 선생이 한때 노동자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20·30대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건 두고 봐야겠다. 하지만 기존 정당은 젊은이들을 양복 입혀서 데려와 당 선전용으로만 썼다. 실제 이들의 생각과 입장을 반영한 정당은 없었다. 나는 그걸 해보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밑에서 치고 올라와야 한다. 내가 이들의 '배후 조종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영광으로 여기겠다."

―그런 차별성이 얼마간 성공한들, 보수당이 지금 같은 분열 상태로 가면 표(票)가 나눠져 내년 총선에서 보수 진영 전체가 완패할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사실 혁신위의 핵심 과제는 보수 통합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결론내리는 것이다. 당내 계파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지만 총선이 다가오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러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수정당으로 바꾸는 정책 안건도 내놓겠다."

―젊은 층 지지는 심상정 의원이 속한 정의당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받고 있는데?

"나는 지금 좌파를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로 본다. 한국 사회에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586 운동권이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고전적 이론으로 보면 좌파도 아니고, 그냥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이고 패권주의일 뿐이다. 20·30 세대에게 이들은 한낱 무식한 꼰대일 뿐이다. 정치판으로 한정하면 이들은 세대 순환을 막고 왜곡하는 일종의 변비와 같다. 586을 걷어 내야 좌(左)든 우(右)든 정상화된다."

―현 정권에서 '586 운동권'이 청와대뿐만 아니라 국회, 정부 부처, 공공기관 곳곳에 포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시대나 연령적으로 주역(主役)을 맡아온 세대가 있다. 586이 바로 그 연령대여서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들에게는 선배 세대에서 볼 수 없는 기형적 측면이 있다. 뭐랄까, 이들은 대학 운동권 시절부터 권력을 맛본 집단이다. 이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기는 5·6공 정권에 걸쳐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학원 내 소요 선동이나 북한 이념과 사상의 전파를 처벌하는 '학원안정법'을 제정하려다가 유화책으로 돌아섰다. 그 시절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유일한 '해방구'처럼 됐다. 학생운동권 간부들은 교내 자판기 수입을 갖는 등 캠퍼스 권력을 보장받았다. 일찍 그런 권력 기술을 익힌 운동권이 지금 정권의 핵심부까지 들어와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주 선생 세대가 586을 배후 조종하고 키운 것 아닌가?

"나는 소위 80년 봄 당시 배후 조종을 했던 지하 조직 '무림'의 1978년 책임자였다. 하지만 광주 이후에 소위 '주사파'가 등장하면서 운동권의 세대 단절이 왔다. 이들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내세워 선배 세대를 무시했다."

―'주사파' 운동권은 서울대생 김영환이 1983년 북한 단파 방송을 베낀 '강철서신'을 경전(經典) 삼아 생겨났다. 김영환 자신도 그런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학생들 식견이 얼마나 얕았고 무비판적이었는지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다.

"나는 1970년대에 이미 단파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들었다. 그 뒤 '주사파' 바람이 불자, 인천에서 지하 노동 활동을 하던 노회찬이 '주사파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문의해왔다. 내가 이론을 지도하는 입장이었다. 나는 노회찬 등에게 북한 체제가 왜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정리해줬다."

―지하에서 활동하던 주 선생이 1992년 무렵 '세상이 바뀌었는데 왜 지하에 있나. 합법적 정당 활동을 하자'고 했을 때 당시 후배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동구권과 소련 붕괴로 레닌주의의 미몽(迷夢)에서 확실히 깨어났다. 우리가 '한국노동당'을 결성(1992년)했을 때 그 모델은 '영국 노동당'이었다. 그런 사회주의 정당을 해보고 싶었다. 당 행사를 할 때도 태극기를 걸고서 했다. 하지만 국회 진출에 실패했고, 그 뒤 소수 좌파 정당끼리 해체·통합을 거쳐 민노당까지 가게 됐다."

―민노당에서 핵심 당직인 정책위 의장을 맡았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가?

"노동자 당원들은 사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포기했다고 보는 게 아니라, 원래 부잣집 아들로 여유 있어 노동운동 같은 짓을 하는 걸로 여겼다. 특히 정당을 만드니까 젊은 날 운동 경력을 우려먹는 놈으로 봤다. 한국 현실에서는 선진국의 좌파 정당 이론이 전혀 안 맞았다. 나의 실패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있었던 것이다."

―운동권이 현실을 모르는 것은 직장에 들어가든 구멍가게를 하든 직접 돈벌이를 안 해봐서 그런 게 아닐까. 노동운동을 할 때는 소위 자본과 기업을 적대시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지 않던가?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당연히 그런 과정을 거쳤다."

―주 선생이 쓴 책에는 '나는 4·19의 시(詩)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는 부제를 달아놓았던데?

"우리가 젊었던 시절 김수영(金洙暎) 시인 바람이 불었다. 김수영을 정신적인 아버지로 여겼는지 모른다. 반면 지질하고 기회주의적인 현실 얘기를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세월이 흐르니 내가 못난 아버지의 밥을 먹고 자랐구나 하고 깨달았다. 박정희·김종필의 지지자였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2008년 종북·주사파 논쟁이 벌어지면서 민노당은 깨지고, 주 선생은 아예 정치판을 떠났는데?

"수적으로 많은 조직원을 장악하고 있던 주사파가 당의 패권을 잡았다. 영국 노동당 같은 그런 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남았을 텐데…."

―그 뒤로 좌파를 향해 수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자, 과거의 동지나 선후배로부터 '변절자'로 매도당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사는데 이런 따돌림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친구와는 지금도 만나면 언쟁이 붙지만. 대다수는 내가 걸어온 행로를 알기 때문에 나를 이해했다. 나는 그쪽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도 586의 잔소리꾼으로 살아왔다.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배의 위상이 달라졌다. 고(故) 김근태 의원처럼 586과 좋은 관계를 이루면 존경받았고, 김지하처럼 잔소리를 하면 공격받았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오늘날 민주노총이 보이는 행태는 '괴물(怪物)의 난동'이다. 괴물을 죽이든지 우리에 가두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좀 심한 말을 했지만, '내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쳤던 결과가 이런 것인가'라는 회한이 있다. 심지어 내 아내도 구로공단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조를 만든 활동가였다. 하지만 지금 민노총은 우리 사회의 최고 기득권자가 됐다. 이들의 오만한 행태를 보는 젊은 친구들에게 '그때 노동운동을 했던 나는 이런 결과가 될 줄 예상 못했다'는 답밖에 할 수 없다. 일종의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인데…."

―주 선생은 "지금 민노총은 1987년 체제가 낳은 기득권"이라고 했는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이 잘 조직되면서 대기업 노동자는 기득권자가 됐다. 상위 10%인 대기업 노동자와 그 외 중소·하도급 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으로 나눠지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만들어졌다.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졌다. 지금 민노총 주도의 노동운동은 상위 10%의 기득권을 지키고 불평등을 확대해온 것이다. 또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간 이해가 대립할 때도 노동운동은 노골적으로 기성세대 편이 됐다."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어떻게 보나?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그 기득권을 그대로 두고 감상적 선의와 환상에서 내놓은 정책이다. 먼저 노동 개혁부터 손을 대야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겨우 이뤄놓았던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 노동 개혁을 현 정권이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현 정권은 입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지만 사실은 민주노총·공무원노조·전교조 등 기득권 세력과 손잡고 있다."


조선일보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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