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전쟁위기 순간에도… 트럼프, 리얼리티쇼 하듯 좌충우돌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입력 2019.06.24 03:29

"재선 날아간다" 폭스뉴스 앵커가 조언… 공격 10분前 작전 취소
비선라인과 즉흥적 정책 결정, 북핵문제도 똑같이 적용될 우려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20일 미군 무인 정찰기를 격추한 뒤 보여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갈팡질팡 행보가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를 책임지는 '최고사령관'으로서 역할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란에 보복 공격을 철회하는 과정에서 공식 외교안보 라인이 아닌 자신과 친한 폭스뉴스 TV앵커가 "전쟁하면 (대통령) 재선이 날아간다"고 조언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에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공식 외교·안보 참모가 아니라 비선(秘線)의 조언과 본인의 정치적 '감(感)'에 국제 안보 문제가 좌우될 수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과 관련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군사 옵션은 계속 테이블 위에 있을 것"이라며 24일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부과 방침을 밝혔다. /신화 연합뉴스
워싱턴 한 싱크탱크 고위관계자는 22일 본지에 "기본적으로 이란 문제나 북한 문제나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방법은 똑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 북핵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무인 정찰기가 격추된 직후인 20일 오전 7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패트릭 섀너핸 국방부 장관 대행,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 등을 백악관으로 급히 불러 조찬 회의를 열었다.

오전 10시15분에는 "이란이 매우 큰 실수를 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국가 차원에서 이란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경고였다. 이후 섀너핸 대행 등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공격옵션을 보고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귀는 비선으로도 열려 있었다. 그는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이때 칼슨은 이란 공격에 대해 "미친 짓"이라며 "만일 이란과 전쟁을 하게 되면 재선과 작별 키스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칼슨의 조언이 가장 울림이 컸다"고 분석했다. 오후 3시쯤 의회 지도자들을 상황실로 초청해 이란의 무인 정찰기 격추 문제와 대응방안을 설명했다. 정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때는 이미 이란에 대한 보복 공격의 승인까지 마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오후 6시 공격을 발표하기 위한 공식 준비에 들어갔다. 그 시각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 해군 자산들은 이란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미 전투기들이 공중에 떠 있었고 버튼만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 상황이었다.

이때쯤 백악관에서 법률고문 등 고위 참모들 앞에서 트럼프는 '예상 사망자 수' 등 오전에 보고됐던 부분을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참모들은 "150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폴리티코는 "150이라는 숫자는 장군이 아니라 변호사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그 수치는 펜타곤 변호사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도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악관 보좌진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란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을 10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갑자기 "공격 중단"을 명령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그(볼턴)는 매파이고 대개 강경한 입장"이라며 "나에겐 균형을 맞추는 반대편 사람들이 있고 궁극적으로 내가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나더러 '전쟁광'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들은 내가 비둘기파라고 한다"며 "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고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그러나 한 측근에게는 "이 사람들(행정부 내 매파)이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간다"며 "매우 역겹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참모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사실을 주변과 상대국에 노출한 것이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NYT는 "이란과 (전쟁 위험이 있는) 치킨 게임을 하는 동안 (여전히) 즉흥적이고, 친구와 적을 똑같이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지난 2년간 외교정책의 위기를 촉발하는 데 익숙하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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