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한 게 최고? 향도 국물도 진~해야 '평양 맛'이지

송혜진 기자 황지윤 기자
입력 2019.06.18 03:00

4인의 탈북민이 선택한 新평양냉면 맛집

"남한 내려와 서울서 제일 유명하다는 평양냉면 집을 찾아갔어요. 육수 물을 좍 들이켰더니 비슷한 거야. '야, 인제 살았다' 싶었는데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세 젓가락까지 드니 느끼하더라고. 어딘가 그 맛이 아닌 거예요."(남북하나개발원 노희창 이사장)

평양냉면만큼 맛을 함부로 논하기 어려운 음식이 있을까. 독특한 메밀 향과 맑고 심심한 육수를 즐길 줄 모르면 "음식 먹을 줄 모른다"는 타박을 듣기 일쑤. 새로운 식당이 나오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기존 유명한 평양냉면 식당과 조금만 맛이 달라도 '변칙'이란 비판을 듣기 쉬워서다. 그럼에도 변화는 오는 법. 우래옥·평양면옥·을지면옥 등으로 대표되던 전통 북한 냉면 맛집에 최근 몇몇 서울 신흥 냉면집이 도전장을 냈다. 탈북민들에게 깐깐한 감별을 맡겼다. 평양 출신인 노희창 이사장, 조선일보 정치부 김명성 기자,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망명북한PEN센터 김정애 이사장, '배우고 나누는 무지개' 김주성 이사와 함께 냉면 맛을 보았다.

◇"국물이 맑고 진해야 평양 맛"

"야, 이거 눈맛이 좋네." 김명성 기자가 서울 서초동 '설눈'의 '고려물냉면'을 보고 감탄했다. 평양 고려호텔 출신이란 주방장이 음식을 내놓는다는 곳. 기존 평양냉면보단 면이 거무튀튀했고, 단무지·오이·닭고기·소고기·돼지고기 편육과 실처럼 가늘게 저민 계란 지단이 올라온 모양새였다. 일행들은 "평양 '옥류관'서 보던 담음새와 비슷하다"고 했다. 국물 맛은 일단 합격점을 넘었다. "평양서 먹던 맛과 비슷해. 담백해요."(김정애), "고기향이 물씬 풍기고 맛도 진하다"(노희창) 같은 평이 이어졌다. 희고 짠 단무지도 인기였다. "군대에서 먹던 그 맛인데요."(김명성)

위 왼쪽부터 ‘동무밥상’의 평양냉면과 소고기회무침. 소·닭·돼지고기 등을 8시간 동안 삶아 우려낸 진한 육수가 일품인 ‘설눈’의 고려물냉면. ‘봉밀가’의 평양메밀물국수와 호평을 받은 군만두. ‘진미평양냉면’의 비빔면과 제육.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 면에서 고소한 향이 난다. /오종찬 기자
2016년 3월 문을 연 서울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의 물냉면도 '괜찮은 맛'으로 꼽혔다. 김명성 기자는 "면에서 고소한 옥수수 향이 나는 게 평양 식당서 나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옥류관이나 고려호텔과는 다른 서민 냉면 맛이다. 통일거리에 있는 '평양면옥'이 생각난다"(노희창)는 평을 들었다.

'옥류관' 출신 윤종철 주방장이 문을 연 합정동의 '동무밥상'은 물냉면과 소고기회무침 조합이 호응을 얻었다. "중국식이긴 한데, 선주후면(先酒後麵·술 한잔 마시고 입가심으로 냉면을 먹는 것)하기 좋은 맛이다."(김주성) 삼성동 '봉밀가'의 평양메밀물국수는 "개운한 냉국 같은 느낌이 남한 사람들 입맛에 더 잘 맞을 것 같다"(노희창)는 평과 "곁들임 메뉴인 만두가 맛있다"(김정애)는 소리를 함께 들었다.

일행은 "서울의 평양냉면 집 육수는 물 탄 것 같은 맛을 내는 곳도 있다"고 했다. "남조선 사람들이 영 틀리게 생각하는 게 냉면 국물이라고 '슴슴하지'만은 않아요. 국물은 맑지만 향과 맛은 진해야죠. 밋밋하다고 다 평양 맛이 아니라니까."(김정애)

◇"자꾸 먹고 싶어야 평양냉면"

품평단은 "평양냉면은 여러 그릇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옥류관 가면 두세 그릇씩 먹죠. 담백해서 안 질리거든." 김명성 기자는 "식초 맛이 북한과 비슷한 곳이 없는 건 아쉽다"고도 했다. "제대로 된 식초엔 달큰하고 은은한 향이 있어요. 훅 코에 끼치는 순간 식욕이 동하지요. 남한의 식초 맛은 너무 시크러워서(시큼해서) 못 먹겠어요." 그래도 식초는 친다. 김정애 이사장은 "냉면에 식초를 쳐야 면발이 쫄깃쫄깃해진다"고 했다. 노희창 이사장은 "북한선 간장도 종종 쳤는데 남한의 간장 맛과는 좀 다르다"고 했다. "맛간장이라고 해야 하나? 끝맛이 달고 개운하지요. 아, 오늘따라 그 맛이 참 그립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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