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고기가 없다?…마장동 한우시장 '블랙 먼데이' 사연은

최지희 기자 최효정 기자
입력 2019.06.15 14:12 수정 2019.06.16 09:42
토요일 등급·경매 사라지니, 월요일까지 일감 ‘뚝’
"생고기는 매일 작업 이뤄져야 품질 유지"
작업량 줄고 최저임금 오르자 인력 반 토막
축산물품질평가원 "주 52시간, 인력확충 어려워"

월요일인 10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 시장. 소매시장을 지나 한우 가공·도매업체가 빼곡히 들어선 골목에 들어서자, 가게 앞마다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며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건장한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생고기가 놓여 있어야 할 커다란 도마는 텅 비어 있었고, 일부 직원들은 한가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고기를 부위별로 나누는 발골(拔骨) 작업으로 한창 분주해야 할 시간이지만, 사실상 ‘임시휴업’ 상태였다. 가게 수십 곳을 돌아봐도 모두 비슷한 광경이었다.

"월요일엔 작업할 고기가 없어서, 발골 기술자들이 그냥 놀아요. 인건비는 나가는데 일할 게 없으니 사장 입장에서 속이 안 터지겠어요?" 텅 비어있는 작업장을 보며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40년을 보낸 유광준(59) 대형육가공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10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 시장 전경. /최지희 기자
◇"토요일 등급 못 받아 월요일 통째로 놀아"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는 850여개에 달하는 한우 가공·도매업체가 밀집해 있다. 단일 축산시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장동 시장에서 고기가 없어 일을 못 한다고 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소와 돼지는 도축→등급판정→경매→가공(발골)의 과정을 거친다. 돼지는 도축에서 가공까지 모든 작업이 하루에 다 마무리된다. 하지만 소는 돼지와 달리, 도축 다음 날에 등급판정을 받는다. 고기 온도가 5도 이하로 떨어져야 등급판정이 가능해서다.

문제는 금요일에 도축되는 한우다. 2006년부터 주 5일제 근무가 시행됨에 따라 토요일 등급판정과 경매가 중단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금요일에 도축된 한우에 대한 등급판정과 경매가 월요일에 이뤄지자, 한우 가공장에는 고기가 화요일 오후가 돼서야 들어온다. 월요일과 화요일 반나절은 사실상 쉬는 날이 된 셈이다.

금요일에 잡힌 소의 등급판정·경매가 사흘 후로 미뤄지자, 고기 질과 가격도 동시에 하락했다. 유 대표는 "생고기는 그때그때 작업을 해야 신선도가 유지되는데, 금요일 도축된 고기가 월요일 아침까지 냉장고에 보관되면 변색이나 중량 저하 등의 품질 하자가 생긴다"며 "‘묵은 소’가 되니 월요일엔 사려는 사람이 줄어 소값이 하락하고, 결국 축산농가에서도 제값을 못 받는 금요일엔 소를 안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공급과 수요가 모두 줄면서 시장 자체가 침체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 월요일에 경매되는 소는 화요일 물량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4월 한우 도매시장의 전체 경매물량(총 7120두)을 요일별로 보면, △화요일 32.6%(2325두) △수요일 31.8%(2264두) △목요일 26.5%(1891두) △금요일 7.3%(521두) △월요일 1.7%(119두) 순으로 차이가 뚜렷하다. 전체 경매 물량 중 약 91%가 화·수·목요일에 집중되고 월· 금요일은 10.1%뿐이다.

그래픽=김란희
마장동에서 5년째 한우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남은(52) 남은종합유통 대표는 "작업을 한창 할 땐 하루에 소 8~10마리가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하루 4마리 하면 많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 대표는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일주일 내내 작업을 해도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든데, 대기업은 주 2~3일 동안 일주일 치 분량을 한꺼번에 경매받아 작업한다"며 "큰 기업이 경매에 참여하는 날은 소값이 비싸니 축산농가에서도 내놓는 물량이 몰려 악순환으로 금요일이나 월요일 경매에는 공판장을 탈탈 털어도 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마장동 한우육가공협동조합에 따르면 최근 3년 새 영세가공업체의 폐업률은 40% 가까이 높아졌다. 주 3일 경매가 고착화하면서 자본력과 인프라를 갖춘 농협이나 이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중견 업체들이 작년부터 주무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에 토요일 등급판정·경매 시행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엔 ‘주 52시간 노동 정책’이 발목을 잡았다. 농식품부가 근무시간과 인력확충 등을 이유로 유관기관과 협의가 필요하다며 이들의 요청을 반려했다. 가공업체들의 끈질긴 요청에 농식품부는 올해 초 "토요일 등급판정·경매 6개월 시범 사업을 관련 기관과 논의해 고려해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범 사업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13일(목요일) 오전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 있는 한 육가공업체 작업장에서 기술자들이 소 가공작업을 하는 모습(위)과 10일(월요일) 같은 시간 작업장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최효정 기자·최지희 기자
◇인력 반 토막…"토요일 등급판정 해달라" vs "52시간, 예산 문제"
가공업체의 작업 물량이 급감한 데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저임금마저 오르면서 육가공업체들의 인력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대형육가공 업체는 작년까지 8명이던 발골 전문 인력을 반으로 줄였다.

다른 작업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남은종합유통은 2년 새 12명이던 직원이 7명으로 줄었다. 남 대표는 "최저임금이 올라 전체 매출 이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까지 치솟았다"며 "반면 작업량은 확 줄어드니 기술자를 많이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날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6년 차 육가공 기술자 이혁수(32)씨는 "작업이 없는 날에도 모든 직원이 출근한다"며 "대신 가공이 아닌 창고 정리 등을 주로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일찍 퇴근한다"고 했다. 발골 기술자 조모(29)씨는 "실업자도 아닌데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니 외부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장동 육가공업체들은 "최소한 토요일 도축된 소만이라도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등급판정만 해주면 육가공업체가 직접 도축장에서 소를 사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등급판정을 담당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은 토요일을 일괄 휴무일로 지정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측은 "토요일에 등급판정을 하려면 주 52시간 근무 때문에 대규모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며 "토요일 등급판정을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제도라서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황인기 농식품부 정책보좌관은 "토요일 등급 판정을 6개월간 시범 사업으로 하는 걸 고려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토요일 근무 인건비 책정과 예산 확보 등 협의할 사항이 많아, 유관 부서와의 협의를 통해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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