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고유정에 대한 다른 시각

박국희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6.15 03:14
박국희 사회부 기자
전 남편을 끔찍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본 이들이 있다. 이혼 소송을 담당하는 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이다. 이 중 한 판사는 "이혼 부부에게 아이들을 만나는 문제는 생각보다 더욱 신경 쓰이고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라고 했다.

경찰이 추정한 고유정의 살해 동기는 전 남편과 아들의 만남 문제다. 2년 전 이혼 뒤 재혼한 고유정은 2주에 한 번씩 전 남편과 아들이 만날 수 있게 하라는 법원 판결을 무시했다. 재혼 생활에 악영향을 받을까 봐서다. 전 남편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고씨에게 전 남편과 아들을 만나게 하라고 강제 이행 명령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범행 당일은 2년 만에 전 남편이 아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이혼 부부의 양육비 문제는 잘 알려진 사회문제다.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는 전 남편 얼굴을 공개하는 '배드 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라는 사이트도 있다. 최근 들어 양육비 문제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고씨 사례와 같은 이혼 자녀들의 부모 면접 교섭 문제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전 남편, 전처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 것은 미성년 자녀들이다. 상담 사례를 보면 양육 부모가 자기를 버릴까 봐 이혼한 아빠, 엄마를 만나고 싶어도 내색하지 않는다는 아이가 많다.

이를 위해 서울가정법원은 2014년부터 청사에 '이음누리'센터를 만들었다. 자녀가 부모를 만나는 데 갈등을 겪는 이혼 부부에게 판사들이 법원 안에서 안전한 만남을 주선해 주는 것이다. 이혼 부부가 대면하지 않도록 출입구와 대기실도 따로 뒀다. 법원 보안 관리대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면접 장면은 녹화했다. 부모 교육과 상담도 이뤄졌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지난 3월까지 면접이 2347회 이뤄졌다. 가정법원 판사들은 "고씨가 제주도에서 면접 교섭 센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원은 2016년 인천과 광주가정법원에도 비슷한 센터를 만들었지만 예산과 인력난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가정법원도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주말에 아이들을 보길 원하는 이혼 부부가 많아 2~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김용대 가정법원장은 "이혼 당사자의 자녀에 대한 면접 교섭 문제는 복지 행정의 일환"이라며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혼 부부가 늘어나면서 사법부 차원에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닌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러려면 이혼 부부가 공동 양육자로서 협력 관계를 이루는 '건강한 이혼'이 되도록 정부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조선일보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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