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전전하다 '5만원 저금통' 훔쳐…'대도' 조세형의 파란만장 절도史

최효정 기자
입력 2019.06.12 18:13
11일 출소 10개월 만에 ‘절도’ 혐의로 또다시 구속된 ‘대도(大盜)’ 조세형(81)씨는 채 5만원도 들어있지 않은 저금통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조씨가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것은 이번이 16번째다. 조씨는 2016년 상습야간 주거침입절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9월 출소했다. 이후 조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여관을 전전하며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서울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1일 오후 9시쯤 서울 광진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저금통을 훔쳐 달아난 혐의(특수절도)를 받고 있다. 범행 당시 저금통에는 5만원도 채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지난 7일 조씨를 서울 동대문구 지인의 집 앞에서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 금액이 소액이지만, 조씨의 범행이 상습적"이라며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한때 대도로 불린 상습절도범 조세형. /뉴스1
조씨는 1970~80년대 사회 고위층의 집만을 노려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렸다. 그는 출소 이후 보안업체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경찰행정학과 강사로 활동하면서 목사 안수까지 받는 등 ‘개과천선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숱한 재범으로 감옥에 드나들기를 거듭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대도’답지 않게 푼돈을 훔치다 다시 철창 신세가 됐다. 그의 파란만장한 절도사(史)를 살펴봤다.

◇"고관대작 집만 턴다" 전설의 대도
1980년대 초 부유층의 집만 턴다는 ‘홍길동’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고관대작과 거부들의 저택의 삼엄한 보안을 뚫고 훔쳐낸 금은보화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義賊)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연일 이 ‘대도(大盜)’이야기를 다뤘다.

경찰은 ‘높은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 대도를 잡는 데 온 힘을 다했다. 1982년 11월, 드디어 대도가 경찰에 잡혔다. 대도의 정체는 절도 전과 11범의 조세형. 고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해 16세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문 ‘범죄꾼’이었다.

/조선DB
흔한 절도범이었던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다. 피해자는 전직 국회의원이나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조씨에게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고 한다.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기 위해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등이었다. 조씨가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도왔는지는 확인 된 바 없지만, 인기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조씨의 검거는 당대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조씨에게서 압수된 현금이나 수표, 귀금속 등을 도난당했다는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난당한 금품 회수보다도 ‘탐관오리'나 ‘졸부'라는 손가락질과 뒤따를 세무조사를 더 두려워 한 탓이다. 상류층 부패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조씨를 의적이라며 추켜세웠다.

◇신출귀몰 탈주 후 15년 복역…출소 후 ‘개과천선 아이콘'
1982년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추적 끝에 검거된 조씨는 재판 중 탈주해 또 한 번 유명해졌다. 1심에서 절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씨는 이듬해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 5박 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하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도주극도 결국 한 주민의 신고로 막을 내린다. 조씨는 어느 가정집 욕실에서 경찰관과 맞닥뜨리고, 경찰관의 권총에 피격당한 채 검거된다

조씨는 결국 징역 15년형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당시 자신이 부유층을 골라서 털어서 괘씸죄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1998년 11월 26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조세형./연합뉴스
조씨는 투옥된 지 7년 만인 1990년, 기독교에 귀의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형기를 모두 마치고 보호감호가 시작된 1998년 4월, 조씨는 ‘보호감호 처분 재심’을 청구한다. 법원은 "종교적 귀의가 진실되며, 긴 수감생활로 쇠약해진 50대에 이르러 재범 가능성이 작다"며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조씨는 그해 11월 26일 마침내 출소한다.

출소한 조씨는 전도사가 됐다. 개과천선한 그를 종교단체, 각종 청소년 단체와 학교 등에서 앞장서서 모셔갔다. 한 보안회사에서는 조씨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했다.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기도 했다. 전과자에서 사회인, 종교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출소 2년 만인 2000년 11월, 선교 활동을 한다며 일본으로 출국한 조씨는 대낮에 도쿄에서 주택 3곳을 털다가 현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검거됐다. 일본 법정은 조씨에 주거 침입 절도죄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도벽 못 끊고 ‘좀도둑'으로 전락한 말년
이후 조씨의 행보는 대도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감형을 받아 일본교도소에서 2004년 3월 출소하게 됐지만 딱 1년 만인 2005년 3월24일, 67세가 된 조씨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한 치과의사의 집에 몰래 들어가 시계 등 160여 만원의 금품을 털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이 범죄로 교도소에서 3년을 복역한 뒤 2008년에 출소한 조씨의 나이는 만 70세 . 더이상의 범죄는 없을 것 같았지만, 2010년 5월 장물아비 노릇을 하다가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뒤 2011년 9월 추석 특별감형으로 출소를 하게 됐다.

하지만 조씨는 교도소 문 앞 10m를 채 걸어나오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다시 체포됐다. 2009년 부천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이후에도 조씨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서초구 서초동과 용산구 한남동 고급빌라에 들어가 명품시계 등 금품을 훔친 혐의로 출소와 구속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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