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식었으니 이혼 許하라"...홍상수 이혼소송 '파탄주의' 부를까

백윤미 기자
입력 2019.06.12 17:12 수정 2019.06.13 08:35
이혼 청구 사유를 법리적으로 보면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갈린다. 유책주의는 이혼 책임이 있는 쪽이 배우자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고, 파탄주의는 결혼 생활이 사실상 파탄나서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면 원인 제공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1965년 첫 판결 이후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첩을 얻은 잘못이 있는 남편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고 가장 최근인 2015년에도 대법원은 혼외자를 낳은 남편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화감독 홍상수. /연합뉴스
영화감독 홍상수(59)씨의 이혼소송 선고가 오는 14일 내려진다. 2017년 배우 김민희(37)씨와 연인사이를 공개한 홍 감독이 부인 A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이 유책주의를 유지할 경우 홍 감독은 이혼을 할 수 없게 된다.

◇홍상수 "사랑하는 사람 있어 결혼 지속 못한다"
홍 감독은 지난 2017년 3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 시사회에서 "(김씨와) 서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다"며 연인관계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김씨 역시 "진심을 다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있다"며 "저희에게 다가올 상황과 놓여질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앞선 판례를 보면 홍 감독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배우자가 아닌 연인관계를 인정하는 등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 감독의 아내는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의 주장이 1심에서 받아들여질 지에 대해 법조계 전망은 밝지 않다. 법무법인 숭인 양소영 변호사는 "유책 사유가 발생한 때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모를까 홍 감독은 현재도 유책사유가 있고, 이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혔다"며 "이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법무법인 한음의 한승미 변호사는 "1심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간간이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법원에서는 유책주의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면서 "이런 기조가 크게 달라져야 할 필요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쪽이 잘못했지만 상당기간 별거를 해서 가정파탄이 명확해졌고, 상대방도 계속 냉대하고, 혼인관계 실체가 거의 와해됐다고 볼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경우엔 유책배우자의 청구를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DB
◇시대에 반응하는 대법 판례…‘유책 vs 파탄’ 박빙으로
유책주의를 고집하는 판례에 변화의 조짐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이혼 사유에 대한 판례를 변경할 지를 놓고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했다. 당시 대법관들의 의견은 7대 6으로 갈렸다. 과반인 7명이 아직까지 파탄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해 기존의 유책주의를 재확인하는 결론이 났지만,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도 6명이나 됐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인복·이상훈·박보영·조희대·권순일·박상옥 대법관은 "부부는 애정과 신의 및 인내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호해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부부간의 화합을 저해하는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혼인 생활의 파탄을 초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6명은 반대의견에서 "혼인의 실체가 없어진 이상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고,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혼인생활의 회복이 불가능해 부부공동생활체로서의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했다면, 이는 실질적인 이혼상태"라고 밝혔다.

지난 2015년 9월 1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 파탄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 여부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는 모습. /연합뉴스
변호사 업계에서도 바뀐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변호사는 "유책배우자임에도 이혼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5년 전보다 2배는 늘었다"며 "10년 전 상담할 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이어 "상대방의 부정행위로 이혼 위기에 놓인 사람들도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것 같은데, 경제적 보상만 되면 못 할 것도 없다’며 미리 소송에 대비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케이스를 보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한 이혼전문 변호사는 "다시는 같은 집에서 숨을 쉬며 살 수 없다고 하는데, 법 때문에 이를 참고 살아야 한다는건 가혹하다"며 "유책배우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아무리 싫어도 잘못한 이상 이혼할 수 없다' ‘이혼하려면 잘못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게 과연 상식적인 판단이겠느냐"고 했다.

◇위자료 상향·징벌제 도입…‘축출 이혼’ 안전망 마련이 우선
파탄주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유책주의 하에서 보호받던 ‘상대적 약자’들의 피해를 막을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책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는 소위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열악한 위치에 있는 여성을 맨몸으로 쫓아내는 수단으로 이혼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파탄주의를 이혼소송에 도입하기 위한 안전망을 오래 전부터 논의했다. 지나치게 낮은 위자료를 현실화하고, 유책배우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혼 후 부양료 지급 등을 놓고도 입법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아직까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2015년 당시 대법원 공개변론에 참여했던 양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위자료가 현실적인 금액이 아니고, 재산분할에서 배우자들이 향후에 발생할 장래 수입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며 "이혼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그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베르나르 뷔페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