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日모노하 원조' 곽인식 회고전

뉴시스
입력 2019.06.12 15:20
곽인식 회고전
"종이위에 뭘 칠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물만 뿌린 다음 힘을 가해서 원이 떨어질 것 같은데 붙어 있다. 섬유질이 길기 때문에 떨어지진 않지만 쫙 찢어져서 그것이 마르니까 팽팽해졌잖아요. 아무것도 안 그린 원 하나인데 그것이야말로 최대한으로 개념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종이가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가지면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은 아주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88)화백은 곽인식이 1972년 파리 시떼 데자르 미술관에 선보인 '한지에 둥근 원' 작품이 아직도 인상깊다.

돌, 도기, 나무, 종이에 먹을 활용한 작업을 한 그의 작품에 대해 설치 미술가 김구림(83)은 "인간의 체취라든가 손의 의미성을 화면속에서 완전히 빼고 담담히 그 자체로만 부각시켜버리는 작품"이라고 했다.


'물성'을 탐구한 곽인식(1919~1988)은 시대를 앞서갔다. 1960년대부터 사물과 자연의 근원적 형태인 ‘점, 선, 원’에 주목해 물질을 탐구했고, 1970년대 모노하를 견인한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단색화 원조'이자, 이우환이 이끈 '일본 모노하(物派)' 원조라 할수 있다.

그의 선구적인 작업 세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예술적 성과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건 일본미술계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919년 경북 달성군 출생, 1937년 도일하여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귀국 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1949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전 50여 회를 갖는 등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유리, 놋쇠, 종이 등 다양한 소재를 실험하며 시대를 앞서 간 작업을 보여주었다. 현대미술의 ‘물성(物性)’과 관련하여 서구에서는 1960년대 후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일본에서는 1970년대 모노하(物波, School of Things)가 국제적인 흐름에 조응하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곽인식의 작품은 이를 훨씬 앞선 것이었다.

일본 미술평론가 히라이 료이치는 "곽인식 작가는 1937년 일본에 건너와 그 후 독립미술협회 이과전을 거쳐서 미술문화협회, 에콜드 도쿄등에 참여했다"며 "50년대 초현실주의 계열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특히 에콜드 도쿄는 초현실주의 경향이 강한 편이라 연관성이 볼수 있다. 일본 미술계에서 우등생 코스라고 할수 있는 과정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초현실주의를 거치는 과정과 추상주의 과정이 있는데, 곽인식은 1930년대부터 일본 전위 작가들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작가는 원색의 물감에 석고를 발라 두터운 질감을 표현한 모노크롬 회화로부터 캔버스에 바둑알, 철사, 유리병, 전구 등과 같은 오브제를 부착하고, 이후에는 유리, 놋쇠, 철, 종이 등 재료 자체에 주목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1961~1963년 '깨뜨린 유리'를 붙여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제시한 작품은 곽인식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됐다.

작가 곽훈(78)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면서 유리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꺼냈다. "유리창은 액션페인팅 하듯 도끼로 내리쳐서 깼느냐 물어봤다"면서 그가 말하기를 "물칠을 해서 큰 돌을 가지고 탁~ 이렇게 깬다고...그 큰 분이 와일드한게 아니고 탁(부드럽데 팔을 내려뜨리는 모습을 재현하며) 그 이야기 하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박수진 학예연구관은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비록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나) 좌우익의 대립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난관을 ‘균열’로 인식하고‘봉합’으로 극복하려는 작가의 태도와 의지를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시기 곽인식은 남북통일활동에도 앞장섰다. '평화통일 남북문화교류촉진문화제'(1961)에 참여하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계열의 미술가협회가 연합한 '연립미술전'(1961)을 기획하기도 했다.


1969년종이를 ‘원’의 형태로 조심스럽게 자른 작업을 선보이는데 이때 종이의 ‘원’은 평면이나 조각이 아닌 물질 자체로 제시된다. 1976년 이후 작가는 강에서 가져온 돌을 쪼개어 다시 자연석과 붙이거나 손자국을 남긴 점토를 만들고, 나무를 태워 만든 먹을 다시 나무 표면에 칠하는 등 인간의 행위와 자연물을 합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조각장에 있는 15m 원기둥 돌탑(작품 86-끝없는)이 그의 작품이다.

후기에는 붓으로 종이에 무수히 많은 색점을 찍어 종이 표면 위에 공간감을 형성한 회화에 몰두했지만 이 또한 물성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일본 미술평론가 히라이 료이치는 "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서 색채를 사용한 물방울 모양의 판화와 그림이 등장하는데, 곽인식에 들은바에 따르면 이 그림은 색을 종이에 칠하고 뒤집어서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뒤집음으로써 물질로 환원하는 것이어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가 천착한 건 '소재와의 대화'다. 미네루마 토시야키 일본 미술평론가는 "곽인식은 대화하듯 정성그럽게 소재를 대면하며 조형적인 문제와 연결하고 하나하나 그 과정을 밟아 나갔다"고 했다. "60년대 후반까지는 주의 깊게 조형적인 틀을 중시하면서 거기에서 물질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기가 할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하나씩 확인하면서 추진해왔고 이런 방식은 더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시대를 앞서간 작가 곽인식의 대규모 회고전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MMCA, 관장 윤범모)에서 13일 개막했다. 곽인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는 국내와 일본에 소재한 곽인식의 작품 100여 점과 미공개 자료 10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46점을 비롯해 리움, 개인소장가들에 대여해온 작품이다.

곽인식의 작품세계를 193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조망하는 전시는 그가 탐구한 ‘물성’이 시대를 앞서 어떻게 발현되고 전개되었는지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곽인식은198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유명했지만, 1988년 68세에 폐암으로 도쿄에서 작고하면서 잊혀진 작가가 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작가 사후 오랜 기간 방치되었던 작품을 발굴하여 총 48점을 6개월간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복원했다. 유리 돌 나무들이 유리관에서 들어있는 전시는 마치 '곽인식 박물관'처럼 연출됐다. 곽인식의 물성 작업에 영향을 받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준(1937~2011)의 '노출 콘크리트'에 영감을 받아 전시장은 '시멘트 건축'으로 공간을 구분해 단순하고 차분하게 선보인다.


전시와 연계해 8월 초 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오광수(뮤지엄 산 관장), 김현숙(미술사가), 히토시 야마무라(도쿄도미술관 학예실장), 치바 시게오(미술평론가) 등 한?일 연구자 4인이 곽인식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되는 이번 회고전은 일본과 한국 화단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곽인식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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