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얼굴인 인천공항에도 '흉물 천막' 친 양대노총

최원우 기자
입력 2019.06.12 01:30

文대통령 2년전 정규직 전환 선언… 전환방식놓고 양대노총 갈등 지속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3층) 한가운데 있는 7~8번 출입문 앞에는 너저분한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은 비닐 천막 2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50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각각 설치했다. 민노총은 비정규직 전원에 대한 조건 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한노총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노조가 맞서고 있다.

11일 하루 7만명이 출국하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에서 민주노총(왼쪽 천막)과 한국노총이 각각 천막을 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이미지 크게보기
인천공항 출국장 문 양옆에 설치한 천막들 - 11일 하루 7만명이 출국하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에서 민주노총(왼쪽 천막)과 한국노총이 각각 천막을 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노총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전원을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노총은 검증을 거쳐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립 중이다. /김지호 기자
청록색 비닐의 민노총 천막은 작년 12월 설치됐다. '엉터리 정규직 전환 야합 철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노총 천막은 지난 3월 등장했다. 천막에는 민노총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전단이 붙어 있었다.

하루 20만명이 오가는 우리나라 최대 관문 공항에서 양대 노총이 흉물스러운 천막을 설치하고 대치하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0)' 선언을 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관문에 양대 노총 천막

지난 10일 출국장을 오가던 내국인과 외국인 여행객들은 어김없이 천막을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1터미널 출국장으로 하루 7만명이 출국한다. 한 러시아인 부부는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 왜 저런 설치물을 그냥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행객 김모(35)씨는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얼굴이나 마찬가진데 외국인들한테 보여주기 창피하다"고 했다.

출국장으로 이어지는 외부 도로변과 공항청사 인근에도 양 노총이 서로의 주장을 내건 대형 현수막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민노총이 '해고 없는 정규직 전환을 책임지겠다'고 써 붙이면 한노총은 '거짓된 선전보다 노동자의 즉각적인 처우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써 붙이는 식이다. '나쁜 하청업체 쫓아내라(kick out bad subcontractors)' 등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영어로 쓴 현수막도 붙었다. 사실상 불법 현수막들이지만 노조원들이 "합법적인 시위"라고 버티고 있어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그야말로 나라 망신인데 규정상 함부로 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대 노총 갈등에 꼬여가는 정규직 전환

공항공사는 올 6월까지 3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2020년 6월까지 나머지 6600명도 전환을 완료할 예정이다. 보안요원 등 안전 관련 업무를 하는 2900명은 공사가 직접 고용하고, 환경미화원 등 시설 유지와 관리 분야는 자회사를 설립해 채용하는 방식이다. 작년 12월 공항공사와 한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한 이후 입사한 3000여명은 '경쟁 채용' 과정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민노총이 "모든 비정규직을 아무런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민노총은 "공항공사가 정규직 전환 약속을 어기고 '경쟁 채용'이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려 한다"며 천막 투쟁을 시작했다. 민노총은 공항공사를 비난하면서 한노총에 대해서도 "공항공사와 야합을 했다"면서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2년전 '비정규직 제로' 선언하는 文 - 문재인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2017년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하는 모습. /뉴시스
그러자 한노총 측은 "민노총이 억지를 부리면서 정규직 전환 협상이 더뎌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양대 노총의 갈등이 커지면서 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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