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모든 길은 가야史로 통한다?

허윤희 문화부 차장
입력 2019.06.12 03:13
허윤희 문화부 차장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최대 규모의 고분군 확인.'

지난 4일 문화재청이 배포한 보도 자료 제목이다. 경남 창원시 현동 유적에서 아라가야 무덤 670여 기가 확인됐고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됐다며, 이를 아라가야 최대 규모 고분군이라고 했다. 또 이 중 840호 고분은 길이 8.6m, 너비 4.54m, 깊이 1.24m 규모로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현동 고분군의 면적은 2만2536㎡. 그런데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인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면적이 52만5221㎡(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홈페이지)다. 말이산 고분군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유적을 놓고 '최대 규모'라는 거짓 제목을 뽑았다. 840호 고분이 아라가야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것도 틀렸다. 말이산 고분군엔 이보다 훨씬 큰 길이 18m 이상의 대형 무덤이 36기나 있다. 현동은 아라가야의 주변 세력에 불과한데도 왕릉급 무덤이 군집을 이룬 중심 유적이란 이미지가 떠오르게끔 발굴 성과를 과장한 것이다.

가야사 복원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가 된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3월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에서 열린 현장 설명회는 축제 현장을 방불케 했다. 대가야 지배 계층 무덤이 모인 이곳에서 가야 건국신화 그림을 새긴 방울이 나왔다며 성과를 공개한 자리다. 조사단은 "고대 건국신화를 형상화한 유물이 발견된 건 국내 최초"라고 했다. 통상 발굴 설명회는 조사단 실무자가 먼저 발굴 경위와 성과를 발표한 후 기자 질의응답이 오간다. 이날은 달랐다. 고령군수, 문화재청장, 경북도 행정부지사가 줄지어 단상에 올라 '축사'부터 했다. 군수가 "국보급 유물이 출토된 오늘은 가야사가 새롭게 출범하는 날"이라고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학계 반응은 싸늘하다. 방울 표면에 새긴 그림을 가락국기 내용에 맞춰 무리하게 짜맞춘 해석이란 것이다. 대다수 가야사 전문가는 "문헌 연구자에게 자문 한번 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해서 빚어진 해프닝" "역사 왜곡을 넘어 창작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동안 가야는 문헌에 남은 기록과 연구자가 많지 않아 신라·고구려·백제에 밀려 소외된 왕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엔 모든 길은 가야사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발굴 실적 부풀리기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문화재청은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모양새다. 한 원로 교수가 쓴소리를 했다. "발굴로 팩트를 밝혀야 할 고고학이 왜곡한 역사를 후증(後證)하는 학문으로 전락할까 우려됩니다. 가야사 복원이 지금처럼 지자체들의 지역 개발 논리에 끌려가면 정권 바뀐 뒤 가야는 빈껍데기만 남게 돼요."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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