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때문에 호러영화 됐다고요? 내 눈엔 귀엽기만 하던데, 호호

황지윤 기자
입력 2019.06.12 03:01

영화 '기생충'의 히든카드 이정은

"칸에 다녀오고 주변에서 '깐(칸) 배우'라고 불러주시는데, 전 아직 안 깐 배우입니다(웃음)."

지난달 22일 제72회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이정은. 당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CJ엔터테인먼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 역을 맡은 배우 이정은(49)을 1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을 연기해 한동안 '함블리' 소리를 들었고,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조연상을 받은 그다. 칸 영화제에 다녀와선 알아보는 사람이 확 늘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니까 옆자리에 앉은 분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라고요. 안과에선 의사 선생님이 진료는 안 하고 기생충 얘기만 하고, 연락 없던 사돈 팔촌의 문자도 받았어요!"

영화는 그가 초인종을 누르는 시점을 전후로 장르가 완전히 바뀐다. 문광의 얼굴이 인터폰 화면을 가득 메우는 이 장면은 관객들이 꼽는 몹시 소름 끼치는 장면 중 하나. 하지만 당사자는 정작 "너무 귀엽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시나리오엔 '술 취한 문광이 초인종을 누른다'고 적혀 있었어요.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제가 워낙 '귀염귀염'한 역할을 많이 하니까 무섭게 받아들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저는 다시 봐도 귀엽던걸요?"

봉준호 감독과는 세 번째 작업이다. 영화 '마더'로 처음 만났다. 3차까지 오디션을 보고 잠시 얼굴을 비추는 단역으로 캐스팅됐다. "보통 단역 배우들에겐 '아줌마 여기 서세요!' 하는데 봉 감독은 이름을 불러주더라고요." 그때 인연으로 봉 감독의 전작 '옥자'에선 수퍼 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감독님이 제 사진과 옥자 사진을 같이 보내면서 '청학동에 사는 착하고 내성적인 돼지 옥자와 정은씨 눈이 닮았다'며 연락해 오셨어요. 정말 이상한 분이죠? 그런데 저도 이상한가 봐. 그게 좋더라니까요." 돼지 소리를 실감 나게 연기하려고 동물원은 물론, 유기농 돼지 농장에서 일을 도우며 돼지 소리를 연마했다.

문광 역을 제안받은 건 '옥자' 시사회 날이었다. 봉 감독은 "내년 일정을 비워달라"는 말을 남겼고, 얼마 뒤 사람이 벽에 가로로 매달려 무언가를 미는 듯한 기이한 자세가 그려진 콘티를 한 장 보냈다. "기계 체조를 연마해야 하나, 어딘가 갇힌 역할인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죠." 내용 전개상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이다 보니 스포일러를 막고자 칸에서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기생충 열풍'이 한바탕 지나가고서 인터뷰하니 아쉽지 않으냐고 물었다. "전혀요. 한 팀이잖아요. 영화를 위해 비밀 유지는 생명이었죠. 칸에선 인터뷰를 안 하니 오히려 긴장이 안 되던걸요?"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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