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큰 남자와…" 반대 무릅쓰고 DJ와 결혼

김동하 기자
입력 2019.06.11 03:34

이희호 여사 97년 발자취

10일 노환으로 별세한 이희호(李姬鎬·97)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꼽힌다. 이 여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2009년 타계할 때까지 '영욕(榮辱)의 반세기'를 함께한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였다. 정치권에선 "이 여사 없이 DJ를 생각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 여사는 1922년 수송동 외가에서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 여사의 부친 이용기씨는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의사였다. 이 여사는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명문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해선 YWCA 총무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1962년 5월 10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이 여사 외삼촌댁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지인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대면했던 이 여사는 10년 뒤 첫 부인과 사별한 김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1962년 결혼한다. 주위에선 강하게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전세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 자녀(김홍일·김홍업 전 의원)도 두고 있었다. YWCA, 여성계 선후배들이 이 여사를 극구 만류했고 눈물로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김대중과 나의 결혼은 모험이었다. '운명'은 문밖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 거세게 노크했다"고 썼다.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이라고도 했다. 결혼 이듬해에 막내 홍걸씨(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가 태어났다. 결혼 이후 10년여간은 비교적 순탄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선, 3선 의원으로 성장했고, 1971년에는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대선에서 석패한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적으로 몰리면서 이 여사는 시련의 시기를 맞았다. 이 여사는 1972년부터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 1982년까지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묘사했다. YWCA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던 이 여사는 늘 감시에 시달렸지만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독재정권에 맞서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옥중의 남편을 향해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다. 겨울에도 안방에 불을 넣지 못하게 했다. 남편이 감방에서 떨고 있는데 혼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지난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여사를 지탱해줬던 힘은 종교적 믿음이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김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여사는 기독교 신자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수차례 대선 도전 과정에서 각종 유세에도 적극 참여했다. 결국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며 영부인에 올랐다. 청와대에서도 이 여사는 매일 저녁 조간신문 가판을 체크해 김 전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조언해 줬다. 2000년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도 이 여사의 내조가 밑거름이 됐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이 여사가 여성과 장애인 등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으면서 김 전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여사는 실제 여성 운동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다. YWCA 활동 외에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다. 각종 여성 단체에서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혼인신고 의무화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영부인이 되고 나서도 한국여성기금추진위원회재단 명예이사장,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명예대회장 등을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한 뒤 이 여사는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활동을 이어갔다. 2009년 9월 김대중평화센터 2대 이사장을 지냈다. 2015년 93세 나이에 세 번째 방북길에 올랐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피해자들에게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추모 메시지에서 "여사는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6시,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 장례위원장은 권노갑 전 의원과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맡고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조선일보 A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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