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의 영화를 맛보다] "칼로리 걱정 접어두고 일단 먹어" 뚝뚝 흐르는 치즈에 사랑도 듬뿍

송혜진 기자
입력 2019.06.11 03:01

'아메리칸 셰프' 햄치즈샌드위치

"살 빠지면 힘도 없어서 그렇게 넘어지는 거야. 더 먹고 다녔어야지!"

작년 가을,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발목의 인대 두 개가 끊어졌다. 수술하고도 한 달쯤 움직이질 못했다. 운동도, 산책도 할 수 없으니 갑갑했다. 움직이질 못하니 맘껏 먹기도 조심스러웠다. 건강식을 겨우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딜 때였다. 호탕하고 농담 좋아하는 학교 선배가 불쑥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살이 1g도 안 빠진 상황이라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우겼다. "살찔까 봐 조금만 먹고 다녀서 그런 거라니까? 잘 먹어야 다치지도 않는 거야!" 그러더니 "주소 좀 불러봐, 뭐 좀 보내줄 테니까"라고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집으로 정말 봉지 하나가 도착했다. 짭조름한 스콘과 단팥빵, 두툼하고 기름진 햄치즈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칼로리 걱정 같은 건 접어두고 일단 먹고 힘내. 그래야 기운이 나지.' 그가 포스트잇에 쓴 메모를 보며 피식 웃는데도 코끝이 괜히 시큰했다. '고마워요, 더 살쪄 볼게요.' 문자메시지로 답을 보내면서 한참을 더 웃었던 것 같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인 칼(존 파브로)도 선배와 비슷한 사람이다. 너도나도 채식과 유기농, 건강식을 외치는 시대. 칼은 그러나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들과 푸드 트럭을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음식을 만드는 칼은, 맛있다면 칼로리 좀 높아도 어떠냐고 믿는 듯했다. 한밤중에 올리브 오일을 흠뻑 묻혀 돌돌 말아낸 링기니 파스타를 만드는가 하면, 두툼하고 기름진 스테이크를 뚝딱 구워낸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쿠바식 샌드위치였다. 뜨거운 철판 위에 고기와 피클·치즈를 끼운 빵을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낸 샌드위치. 빵 사이 치즈가 녹아내려 뚝뚝 흐를 때까지 구워낸 것을 아들과 나눠 먹으며 칼은 "내가 정말 잘하는 건 이런 거야. 난 완벽한 아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잘하는 걸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라고 했던가.

선배가 보내준 햄치즈샌드위치를 프라이팬에 다시 바삭하게 구운 다음,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래 살 좀 찌면 어떤가. 죽죽 늘어나는 치즈 따라 내 영혼도 폭신하고 말랑해진 것을!


조선일보 A20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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