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 해결 능력 잃은 '不能 정부' 아닌가

입력 2019.06.11 03:20
반(反)화웨이를 둘러싼 미·중의 압력이 고조되는데 청와대가 "개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하자 IT 업계를 비롯한 산업계가 말을 잃었다. 한 기업인은 "자칫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뭐 하자는 건가"라고 분노했고, 경제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앞장서 해결해야 할 일을 민간 기업에 미루는 게 무슨 정부냐"고 했다. "이게 정부냐"는 것이 산업계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미·중의 압박 앞에서 주요국들은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영국·대만·호주 등은 정부 차원에서 반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것을 결정했다. 러시아와 태국·필리핀·베트남 등이 화웨이 장비를 계속 사용하기로 한 것도 정부가 주도해 내린 결정이었다. 미국과 동맹 관계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관계가 깊은 한국 입장에선 어느 한쪽 편에 서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정부로선 대외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정부가 문제 해결의 주도자이자 책임자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산업계와 협의하고 소통하면서 전략을 짜고 시나리오를 세워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미·중 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정확한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나.

제철소에 천문학적 손실을 입힐 고로(高爐) 가동 중단 문제는 해결될 조짐이 없다. 충남도가 제철소 고로에서 오염 배출 물질이 난다는 시민단체 민원을 받아들여 '10일간 조업정지' 조치를 내렸고, 다른 지자체들도 뒤따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로는 5일 이상 가동하지 않으면 쇳물이 굳고 복구에 3개월 넘게 걸린다. 세계 모든 나라가 다 하고 있는 고로 밸브 개방 방식에 대해 한국만 제동을 걸고 있는데 환경부나 산업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세계 최고 경쟁력의 한국 철강산업이 시민 단체 몇 곳에 발목을 잡혔다. 정부의 무대책, 무책임 때문이다.

민노총과 한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소형 원격 조종 타워크레인의 금지를 요구하면서 불법 점거 농성 파업을 벌여 이틀간 전국의 건설 현장을 마비시켰다. 월급 외에 각종 뒷돈을 꼬박꼬박 챙기는 덕에 월 소득이 1000만원 가까이나 돼 '월천 기사'로 불리는 이 노동 귀족들이 노조에 소속 안 된 소형 크레인 기사 8200여 명, 그리고 155만 건설 일용직 근로자의 생계는 안중에도 없이 불법 파업을 벌였다. 정부가 한 일은 노조를 달래 파업을 일시 중지시킨 것이다. 언제 재발할지 알 수 없다.

한국 조선산업의 명운이 걸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합병은 정부가 추진해놓고도 노조가 반대하자 대통령과 장관이 먼 산을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노조에 막혀 기업 실사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정부의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노조 시위 현장에서 '정부'는 없어진 지 오래다. 민노총의 경찰 폭행, 민간인 폭행도 다반사다. 이 현장에 공권력은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소득 주도 성장을 한다고 2년간 최저임금을 29%나 올려 자영업자들을 줄도산시켰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하겠다고 대책 없이 버스 업종까지 포함시켜 놓고는 버스 대란을 자초했다. 혁신 경제 한다면서 공유 택시 하나 해결 못하고 있다. 서울 집값 잡겠다고 졸속으로 3기 신도시 대책을 내놨는데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니 또 졸속으로 대책을 내놨다. 지금 정부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유발자다.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 '불능 정부' 2년이 지금의 국정 모습이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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