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66] 아침 숲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2019.06.10 03:08

아침 숲

저것은 옛날의 눈
시인 비용이 찾던 그 눈
상아탑 꼭대기에서 바라다보이는 그런 눈
누군가 아침에 먹다 남기고 간 부스러기가 빛나고 있다
生을 지켜주던 바람이 멀리 보이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태어나고 있다

―임선기(1968~ )

숲이 우거져 마침내 '여름의 체형'을 이루었습니다. 위엄이 깃들어 그 안으로 쉬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숲을 지배하는 것은 이제 순전히 자재(自在)한 왕인 시간! 완벽하게 짜인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숲은 살아 있습니다. 인류는 거기서 스스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멀찍이서 바라봅니다. 그 '옛날의 눈'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 '눈'은 지금 인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옛날의 눈' 속에 깃든 생명의 자취인 '먹다 남기고 간 부스러기'마저 '빛나는' 신비의 징표입니다.

마침 멀리서 바람이 일어납니다. 숲은 일렁일 테고 나뭇잎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뒤집혀 또 다른 표정이 됩니다. 소리도 상쾌합니다. 순간 숲에 '사랑한다는 말'이 새겨졌습니다. 그 글자는 아무에게나 보이지는 않겠죠. '시인 비용' 아저씨도 '상아탑'이 아닌 건너편의 '숲'에서 그 '진리'의 그림자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숲을 두고 책을 볼 일이 아니고 책을 내려놓고 '숲'을 읽을 일입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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