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BTS라는 자기계발서

최보윤 문화부 차장
입력 2019.06.10 03:12
최보윤 문화부 차장
영국 런던에 사는 데이지(17)는 4년 전만 해도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였다. 잦은 괴롭힘으로 학교생활은 공포였다. 그는 우리말로 또박또박 "BTS가 날 구해줬다"고 말했다. "유튜브를 보다 '나약해 지지마, 이길거랬잖아'라는데 제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았죠.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정신적 무기가 됐어요."

네덜란드의 헤이예스(24)는 "대학도 못 가고 취업도 안 돼 방황했을 때 BTS 초기 시절 이야기를 알게 됐다"며 "앞날도 모르고, 힘든데도 최선을 다하는 걸 보면서 'BTS처럼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얼마 전 직장도 구했다"고 말했다.

영국 웸블리 방탄소년단(BTS) 공연장에서 팬들 이야기를 들으니 BTS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자기계발서'였다. 여러 가지 벽 앞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건 한국이나 지구 반대편 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BTS 나라'에서 온 기자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을까? 1일 기자회견에서 영국 SKY뉴스 기자는 BTS에게 물었다. "팬들을 만나보니 힘든 시기를 극복하게 도와주고,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입을 모은다. 비결이 뭔가."

무대 위에선 '수퍼히어로'일지라도 "넘어져 다치고 아파도 끝없이 달리네 꿈을 향해"('영포에버' 가사)라는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적 고백을 솔직히 꺼내는 스타에게 팬들은 '정신적 교과서'라고 했다. 미국 데이터분석기구 크라우드탱글에 따르면 지난 석 달간 BTS공식 트위터 계정이 생성한 리트윗 등 '상호작용'은 4억건. 2위(트럼프)에 4배 가까이 많은 수로 단연 세계 1위다. BTS가 건네는 위로는 공감으로 발전하고, 동경으로 승화했다. 아미(BTS 팬클럽)는 '가족'이라 의미 부여하며 서로 응원했다. 노랫말 등에 인용된 헤르만 헤세, 칼 융, 어슐러 르귄 등의 책을 찾아 읽는 'BTS북클럽'도 생겼다.

BTS는 골리앗 같은 서양 주류 대중문화계를 향해 던진 다윗의 '한 방'이다. 리더 RM 표현처럼 "거대하고, 거대한 벽" 앞에서도 주눅 드는 게 없었고, "벽을 깼다". 지난해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 수업의 한 교수가 "BTS를 모르고선 신흥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거나, 미 에미상 수상 작가 제임스 포드가 TED 토크에서 "BTS와 팬의 상호작용이 주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은 지역 저널리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짚은 사례 등을 보면 영향력은 이미 음악계를 넘어섰다.

리더십 구루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책 '트리거'에서 삶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에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능동적 질문을 하라고 설파했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의미의 '방탄소년단'이 세상을 향해 당긴 '변화와 성장'의 방아쇠는 그 살아있는 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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