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워라밸은 어떤가요?"… 전직 스터디 몰리는 2~3년차 직장인들

이영빈 기자
입력 2019.06.08 03:00

[아무튼, 주말]
힘들게 취업하고 직종 옮기려 해

전직(轉職)을 위한 직장인의 스터디 결성이 잦아졌다.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한다. 취업 팁부터 내밀한 소문까지 오가는 이야기가 다양하다. 사진은 서울 신촌 한 스터디 카페에서 그룹 스터디를 하는 모습. 사진과 기사는 관계없음. / 김지호 기자
"지금 회사는 속아서 들어왔어요. 연봉부터 근무 강도, 분위기 등 취업준비생 때 들었던 이야기와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여모(29)씨는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폭로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그 기업은 그래도 워라밸(삶과 일의 균형)을 중요시한다면서요?” 질문이 나오자 여씨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 회사에 대한 소문이잖아요. 현실은 ‘토·일요일 중에 어떤 날에 일할래’예요. 선배들도 주 6일 근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고요."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전직(轉職) 스터디’의 풍경이다. 직업을 바꾸고 싶은 다양한 업계의 직장인 4명이 모여 만들었다. 특정 업계가 선호하는 사원상을 알려주는 취업 팁부터, 업계 종사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들이 오간다.

같은 업계로의 이직이 아니라, 직종 자체를 바꾸는 전직에 성공하겠다는 게 모임의 목적. 요즘 취업 시장의 새 트렌드다.

우선 인터넷 게시판, 인맥을 총동원해 각자 이해관계가 맞는 구성원을 모집한다. 웬만해서는 취업 시장에 나오지 않는 로스쿨생, 교사 등은 구하기 어려워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스터디에서는 같은 장소에 모여 각자 지망하는 회사에 맞는 공부를 한다. 그러다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을 꺼낸다. 해당 업계에서 일하는 스터디원이 주로 답변하고, 다른 사람이 첨언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스터디 룸에도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모였다. 이 스터디는 프로그래머, 인사팀 직원, 로스쿨 출신 취준생 등 각기 다른 직종의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윤남씨, 대학 시절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은 면접 때 자주 물어보나요?” 한 스터디원의 질문이 침묵을 깼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우모(33)씨가 프로그래머 권윤남(29)씨에게 한 질문이었다. “특이하면 물어보겠죠. 그런데 보여주셨던 포트폴리오에는 별 흥미가 없을걸요. 차라리 저번 달에 만드신 코드를 어필하시는 게 더 먹힐 거예요.” 권씨는 대답 후 법조계로 가기 싫어 일반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로스쿨 출신 스터디원에게 다른 질문을 꺼냈다. “추리논증(‘LEET·법학적성시험’의 한 과목)에서 너무 어려운 지문이 나오면 맨 마지막에 푸는 게 나을까요?” 이 스터디를 만든 권씨는 “보통의 스터디에서 하는 문제 풀이, 자기소개서 검토 등은 각자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진행하지 않는다”며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쉽게 들을 수 없는 정보를 나눈다”고 했다.

스터디원들은 정확한 정보를 가져올 의무가 있다. 최근 한 스터디원은 “우리 회사는 산업재해 처리를 받기 힘들다”며 소문을 들려줬다. ‘직원이 업무 중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사측에서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는 대신 회사 건물 카페 운영권을 준다고 제안했다. 산재 처리 받는 것보다 돈은 더 받을 테고, 회사 입장에서도 기록에 남는 것 없이 깔끔해서 일석이조라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스터디장(長)은 “내일 출근해서 알아보고 알려 달라”라며 이날 시간을 마무리했다. 이 스터디원은 “누군가 업계 정보를 들려줄 때 관심이 커지면 소문인지 진짜인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오고 가는 정보는 사내 분위기부터 소문까지 다양하다. 주된 관심사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신입 스터디원은 ‘근무 강도가 어떠냐’는 질문을 꼭 한다. 업계 내 특정 회사에 대한 소문도 공유한다. ‘노조가 있지만 초년차가 가입하면 눈치를 준다’ ‘점심은 무조건 부서원들과 같이 먹어야 한다’ 등이다.

전직을 포함한 이직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근로자 중 회사를 옮긴 사람은 2012년 약 26만명에서 지난해 36만명가량으로 6년 사이 10만명 정도 늘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과거와 비교해 이직자 중 직종을 바꾼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 회사를 오래 다닌 사원과 맺는 ‘전직 금지 약정’을 신입 사원이 회사를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용도로 쓰는 기업도 생겨났다.

당장 회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정보 ‘품앗이’를 하고 자기 계발을 하려고 스터디에 참여하는 직장인도 있다. 지역 항만공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물류 이론, 항만법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는 팁을 나눠주고,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한 공부를 한다. 그는 “공기업 종사자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다는 권유에 들어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뒷담화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장덕형(31)씨는 “내가 가입했던 스터디에서는 자기 회사만 욕하는 ‘집단적 독백’ 현상이 벌어졌다”며 “스터디를 잘 고르는 안목도 중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B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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