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 파티를…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

박근희 기자
입력 2019.06.08 03:00

[아무튼, 주말]
각광받는 팜파티 어디서 즐길까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밀밭의 창고에서 열린 팜파티 형식의 미식 행사 '흙으로부토'. / 어반파라다이스
여름 농장은 초록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파티가 열린다. 누군가 정성스레 일구고 가꾼 밭, 숲, 정원에 초대받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그녀(김태리)처럼 농작물을 수확하고 요리도 해먹는다. 사과꽃 피는 5월엔 사과나무 그늘에서 농장 주인의 사과 이야기를 듣고 포도가 익어갈 땐 포도밭에서 와인을 시음한다. 농장에서 열리는 ‘팜파티(farm과 party의 합성어)’. 초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시즌이다.

밀밭, 사과농장, 목장에서 팜파티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어느 밀밭에선 ‘흙으로부토’라는 팜파티가 열렸다. 서울 한남동의 한식 바(bar) ‘부토’가 매달 마지막 주에 주최하는 ‘월말부토’ 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이벤트였다. 사전 신청한 참가자 22명은 부토에서 사용하는 채소 산지(産地)를 찾아가 ‘농부 선생님’ 박형일씨와 채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부토의 임희원, 노상훈·고경표 셰프가 이곳에서 수확한 재료들로 만든 요리를 즉석에서 맛보기도 했다.

밀밭 한가운데 허름한 창고가 파티 공간으로 변신했다. 부토와 힘께 행사를 기획한 이정희(31) 어반파라다이스 대표는 “도시 사람들은 농장에서 갓 수확한 농작물을 먹는 기쁨을 잘 모른다”며 “산지 투어 같은 팜파티로 좋은 식재료의 가치와 테이블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생산자의 철학이 담긴 재료, 퍼포먼스에 가까운 셰프들의 요리, 밀밭에서 석양을 보며 마시는 와인은 그 자체로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팜파티 장소로 변신한 충남 홍성군 홍동면 밀밭의 창고. / 어반파라다이스
지난달 30일 경기도 연천군 '태연이네 사과농장'에서 열린 팜파티. 팜파티는 자연주의적 소박한 삶이 주목받으며 농촌 체험 관광의 트렌드로 뜨고 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30일 경기도 연천 ‘태연이네 사과농장’. 사과 밭 고랑에서 팜파티를 진행했다. 5600㎡(1700여 평) 사과농장의 일부를 올해부터 주말농장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사과나무 분양식과 함께 열린 행사였다. 참가자들은 농장주 윤도병(69) 대표로부터 연천 사과의 우수성과 농장을 가꿔온 이야기를 들으며 사과나무 아래서 봄날을 즐겼다. 참가자 최유롭(30)씨는 “평범한 사과밭에서 한 팜파티라 신선했고 베테랑 농부에게 귀농을 비롯해 유익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농작물 대신 말과 곤충이 주인공인 팜파티도 있었다. 지난 1일 용인시 양지면 ‘용인 포니 승마클럽’과 인근 ‘숲 속 곤충 마을’에서 용인시농업기술센터와 사이버농업연구회 주최로 ‘우농현답(우수한 농가 현장엔 답이 있다) 팜파티’ 1회 행사가 열렸다. 승마 체험과 곤충 생태 체험이 결합한 ‘미니 운동회’ 형식이었다. 이른 더위 속에서도 참가자 50팀은 행사를 기획한 전근영(44) 파티플래너와 함께 두 농장을 오가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킨포크 라이프와 파티의 진화

우리나라에 팜파티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13년 당시 정부가 농촌 문화 콘텐츠와 마케팅 수익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킨포크 라이프(kinfolk life) 유행, 소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팜파티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전과는 좀 다른 양상을 띠었다. 지자체나 마을조합, 생산자인 농부가 직접 농산물을 모아 놓고 시식 행사를 하며 장터를 열고 단순히 식사를 제공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팜파티 전문 기획자나 파티 디렉터·플래너가 투입된다. 농가와 도시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역할을 대행해준 것. 농촌으로 간 파티플래너들은 상차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경기도 연천군농업기술센터와 협약해 ‘태연이네 사과농장’ 등 6개의 농장에서 팜파티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김은영(44) 팜파티아 대표는 “단순히 ‘남의 밭에서 하는 파티’ 개념이 아니다. 소비자는 산지에서 먹을거리에 대해 이해하고 즐기는 방법을 배우고, 농장주는 우수 농작물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리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주인공인 농작물이 돋보이는 자리다. 시식 정도에서 끝나던 행사도 요리사 출신 귀농인과 참가자들이 주체가 돼 파티 테이블을 함께 완성하기도 한다. 이따금 산골 음악회 등과 같은 공연, 특산물 이색 전시도 곁들여진다. 즐길 거리가 생기다 보니 팜파티 참가층도 20~30대부터 어린 자녀를 둔 가족, 귀농을 고려하는 중·장년층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지역 문화기획자들이 나서기도 한다. 자연놀이터 ‘바테(VATTE)’는 박혜란 바테 대표를 비롯해 경남 거제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이 이색 팜파티를 열어오는 곳. 1970년 부친(박문길)이 개인 농장으로 가꿔온 ‘길농장’을 박혜란 대표가 운영하기 시작하며 자연 놀이터로 변신했다. 평상시엔 예약에 따라 자연 놀이터로 운영하고 플리마켓, 팜파티가 있을 땐 행사장이 된다. 거제 특산물을 모아 마켓을 열거나 바테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미식 행사를 열었다. 박 대표는 “자연 놀이터나 관광농원, 농장들이 도시와 농촌 간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테를 꾸몄다”고 했다. 김귀영 귀농귀촌종합센터장은 “마케팅 감각이 있는 귀농인들이 창조해낸 다양한 직거래 방식 중 하나가 팜파티”라고 했다. 새로운 농촌 문화에 대한 수요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플리마켓과 팜파티 장소 등으로 활용되는 경남 거제 자연 놀이터 '바테'. / 바테
제철 먹을거리 테마 파티

농번기에는 팜파티만을 전문으로 하는 농장은 드물다. 농장주 개인이 여는 소규모 팜파티를 제외하곤 아직은 지자체와 연계된 행사가 대부분이다. 작황이나 날씨 등 변수가 많아 일정도 유동적이다. 그래도 실망할 것 없다. 6~10월 눈여겨볼 팜파티들이 기다린다.

오는 29일 강원도 홍천 포도 재배 농가 ‘샤또 나드리’의 너브내 와이너리에선 ‘와이너리 다이닝’이 마련된다. 머루 포도로 담가 3년 숙성시킨 와인을 맛보며 농장주 이야기에 빠질 수 있는 파티다. 7월 20~21일 경남 하동군 고택 ‘하루해’ 잔디밭에서 여는 고택 팜파티도 기대된다. 하동 특산물을 맛보며 고택에서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사과·배 수확철인 9월 7일 경기도 연천 태연이네 사과농장에선 ‘나의 사과나무 팜파티’가, 9월 21일 충남 아산 주원농장에선 ‘유기농 배밭 팜파티’가 도시민을 맞는다. 자세한 일정 확인은 ‘팜파티아 마켓’.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용인농업기술센터의 우농현답 2회차는 8월 31일 용인 산토리니 관광농원에서 ‘한여름 밤의 꿈’ 테마로, 3회차는 9월 28일 ‘알찬유정란’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계(鷄)’ 테마로 건강한 먹을거리와 동물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체험한다. 4회차는 10월 19일 용인곤충테마파크에서 ‘핼러윈파티’ 형식으로 열 예정이다. 문의 및 참가 신청은 용인시농업기술센터 도시농업팀.

거제 바테에선 유자를 수확하는 10월 중순 이후 ‘거제 유자 팜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박혜란 대표는 “거제는 유자 산지지만 마케팅에 실패해 문을 닫은 농가가 많다”며 “거제 유자를 알리는 팜파티를 기획 중”이라고 했다. 수확 체험과 유자 요리 시연회를 펼친다. 부토의 ‘흙으로부토’ 시즌2 행사도 9월쯤 다시 한번 개최한다. 자세한 일정은 각각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지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B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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