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AI 추격 못 하면 여기서 끝난다

정성진 산업2부장
입력 2019.06.06 03:14

전 세계가 전문 인력 확보 전쟁 중… 韓은 대학 정원 확대조차 불가
IT 투자 안 했으면 현재 없듯 지금 AI 총력전 안 하면 미래 없다

정성진 산업2부장

최근 캐나다의 AI(인공지능) 연구소인 엘리먼트AI가 낸 '글로벌 AI 인재 보고서 2019'는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2018년 국제 학회 21곳에 발표한 논문 저자를 조사했다. 세계 톱 AI 인재들이다. 전체 2만2400명 중 한국인은 1.8%인405명이다. 미국(1만295명)·중국(2525명)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IT(정보 기술)에서는 우리가 해볼 만하다"는 일본(805명)의 반에 불과하다. 이미 경쟁은 끝난 듯 보인다.

"병사 많다고 전쟁에서 꼭 이기느냐"는 말은 여기서 안 통한다. AI 개발은 '사람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에 비유된다. AI는 똑똑한 소프트웨어다. 사람 대신 바둑을 두고 운전한다.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쓴다. 자기가 알아서 배우며 똑똑해진다. 그러나 AI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배울지는 사람이 결정한다. 공부할 자료도 사람이 고른다. AI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국외대 최대우 교수는 "책이 많은 집 아이가 크면서 독서를 많이 하듯, AI도 학습 데이터를 사람이 방향을 정해줘야 한다"며 "AI는 노동 집약적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사람이 없으면 키워야 하지만, 쉽지가 않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55명이다. 15년째 똑같다. 확대는 꿈도 못 꾼다. 정부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규제한다. 다른 과 정원을 뺏어 오는 건 학내 폐쇄성 탓에 불가능하다. 서울대가 최근 대학원 연구원 형태로 AI 인재를 키우겠다고 한 배경이기도 하다.

수입은 글로벌 회사와 경쟁해야 하니 더 어렵다. 국내 최대 인터넷 회사인 네이버는 '탤런트 릴레이션십 TF'라는 조직을 운영한다. 비공개 스카우트팀이다. 세계에서 열리는 AI 관련 학회에 무조건 참가해 연구자들을 접촉한다. 돈도 쏟아붓는다. 네이버의 작년 인건비는 4년 전의 2.1배다. 영업이익 규모가 휘청거렸을 정도다. 구글, 아마존, MS에서도 제안을 받는 인재를 데려오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인재를 지키기도 어렵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AI 관련 학과 출신은 자신이 조금만 노력하면 학부만 마쳐도 미국에서 워킹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퍼져 있다"며 "우리한테 오라고 설득하기가 그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이 AI에서는 왜 이 꼴이 됐을까.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스마트폰처럼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의 성공에 우리가 자만했다"고 말했다. AI의 기반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국이 성공한 것은 게임밖에 없다. 컴퓨터 운영체제(OS)부터 공장용 시스템까지 국산은 찾아보기 힘들다. 불법 복제 등 지식재산권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관행을 수십 년 동안 바로잡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큰돈 들여 꾸준히 핵심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않고 외국 회사 소프트웨어를 사서 썼다. 이러다 보니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는 시스템을 깔아주고 돈을 받을 때 '투입 인력 곱하기 시간'으로 계산한다. 후진적이다.

늦었으니 포기하고 갈 수는 없을까.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AI는 IT처럼 인간에 스며든다"고 표현했다. 30년 전, 주판이 없어지고, 걸어다니며 전화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런 세상은 왔다. 정부가 안 하면 대학이, 대학이 안 하면 기업이라도 나서서 사람을 키워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산업이 AI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성공한 경험이 있다. IT 산업을 구성하는 반도체, 스마트폰, TV 중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은 없다. 그러나 모두 우리가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AI도 IT처럼 추격에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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