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검사가 좋아하면 제안, 싫어하면 청탁입니까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입력 2019.06.03 03:17

서른 넘은 한국인이면 검찰에 곤욕 치른 얘기를 듣거나 겪어
검사는 법정에서 이기면 그뿐… 꼼꼼하고 공정한 수사 중요치 않아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일부 넘기는 게 정부·여당이 낸 검경 수사권 조정안(案)의 핵심인데, 이건 민주주의 원리와 기본권에 반한다고 그는 말했다.

맞는 말일까. 이것은 사려 깊게 객관적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우파나 좌파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법 시스템 개혁은 이데올로기나 당파적인 충성심에 맡길 일도 아니라서다. 현재의 시스템이 정부·여당안보다 민주주의에 더 좋으냐, 나쁘냐 하는 질문이다. 일화를 들어 답해보겠다.

한국 로펌에 근무하는 외국인 변호사가 기업을 대리해 공무원을 만나 제안을 하나 했다. 정상적이고 합법적이고 통상적인 일이다. 공무원은 이런 제안들을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검사가 이 일을 듣고 불쾌해하며 해당 변호사를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변호사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저는 그저 제안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사는 "아니, 당신은 청탁을 했고, 그건 불법"이라고 했다. 변호사가 "그건 검사님의 해석일 뿐"이라며 "제안과 청탁이 법적으로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검사는 "그야 간단하다"며 "제가 변호사님을 좋아하면 제안이고 싫어하면 청탁"이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검사를 욕하기는 쉽다. 하지만 검사 편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 검사가 소임을 하려는데 변호사가 영리하게 굴며 협조를 거부했다. 얼마나 짜증스러운 일인가. 우리 모두 일하다 짜증 날 때가 있지 않은가.

맞다. 짜증 날 때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권력자가 단순히 자신이 짜증 난다는 이유로 어떤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법과 행동 준칙을 필요로 한다. 힘을 가진 사람이 짜증 난다고 어떤 행동을 하면 해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김정일이 어느 날 원산에 갔다가 아이들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1년 뒤 김정일이 다른 데 갔다가 "왜 아이들이 다 머리를 빡빡 깎고 있느냐"고 했다. 부하들이 "작년에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셨다"고 하자 김정일이 "내가?" 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한 해 전에 한마디 툭 한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민은 결코 고결한 영혼이 아니라는 게 자유민주주의 기저에 있는 아름다운 진실이다. 현실에서 우리들 개개인은 선량함과 결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다. 민주주의 사회는 선량한 개개인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허용하되, 이런 결함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한다.

앞서 하던 검사 얘기로 돌아가 보자. 만약 그 검사가 신문 지상을 도배하는 사건을 맡아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검사 입장에서 일을 잘하는 건 법정에서 이기는 거지, 법원이 '꼼꼼하게 수사했다'고 인정하거나 변호사가 '공정한 수사였다'고 수긍하는 게 아니다.

몇 년 전 검찰이 한 외국계 펀드를 수사한 일이 있다. 검사가 펀드 직원에게 "진술서에 서명하면 가실 수 있다"고 했다. 펀드 직원이 "사실이 아닌 내용이라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검사는 펀드 직원에게 일어나서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한 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검사는 5시간 뒤 돌아왔다.

피고인을 밤샘 조사하고, 변호사가 동석하지 못하게 하고, 유죄판결도 나오기 전에 포토라인에 세워 범죄자 취급하는 관행이 모두 검사가 일 잘하려는 과정에서 생겼다.

이런 관행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서른 넘은 한국인 대부분은 이 비슷한 얘기를 들어 봤거나 겪어 봤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학대를 제도화한다.

결과는 대단히 해롭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불공정하면 사법 시스템 전체가 경멸받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녀의 측근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앞두고 한 한국 기자가 이런 농담을 했다.

"세 명 다 유죄판결을 받되 이 부회장은 재벌이니까 두어 달 살고, 박 전 대통령은 정치인이니까 두어 해 뒤 사면받고, 최씨는 일반인이니까 잊혀서 20년 살고 나올 겁니다."

우습지만 실은 비극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불공평한 사법 시스템이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 검찰의 권한을 나누겠다는 정부·여당안은 일리가 있다.



조선일보 A30면
공동주택 공시가격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