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손석희 배임죄는 ‘실행착수’가 없었다?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9.05.24 18:22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번 주 ‘손석희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경찰은 손석희 JTBC 대표에 대해 "폭행 혐의는 기소 의견, 배임 미수 혐의는 불기소 의견"이라고 밝혔다. 손석희 대표는 세 가지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프리랜서 기자 김웅 씨를 때렸다는 폭행 혐의, 그리고 배임 혐의, 명예훼손 등이다. 이 가운데 ‘폭행’은 기소 의견, ‘배임 및 배임미수’ 죄가 되는지는 불기소 의견, 이렇게 정리됐다.

이번 사건은 맞고소 사건이었다. 손석희 대표는 "김웅 씨가 나를 협박했다"면서 공갈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경찰은 손 대표의 배임미수는 불기소 의견을 밝히면서 김웅 씨는 공갈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우리는 경찰의 수사 결론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런 협박을 했다고 해보자. "나를 취직시켜 주지 않으면 당신의 불륜 사실(혹은 뺑소니 교통사고, 혹은 폭행 사실)을 폭로하겠어." 그러자 협박을 당한 상대편이 이렇게 말했다. "알았다. 우리 회사에서 당신을 2년 동안 채용하고 월 1000만원 보장해줄게. 대신 입 다물기다." 이런 얘기가 오갔고, 문자 메시지, 대화 녹취 같은 증거물도 있다.

자, 그런데 경찰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김웅 씨가 협박을 했던 부분은 공갈죄가 성립된다고 봤고, 손석희 대표가 자신의 개인 일을 무마하려고 회사 돈으로 월 1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던 부분은 배임미수 죄가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개인적인 일에 ‘회사 돈’, 즉 공금을 유용하면 배임죄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법 감정으로는 A의 공갈죄가 성립하면, B의 배임미수 죄도 성립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정도 지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경찰도 했을 것이다. 경찰도 찜찜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이 들고 나온 희한한 해명이 ‘실행 착수’ 여부다. 손 대표에게는 배임을 하려는 ‘실행 착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웅 씨를 월 1000만 원짜리로 채용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손석희 대표는 김웅 씨에게 "책임자 회의를 통해 (용역·투자에 대한) 세부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처음에 이것은 손석희 대표에게 매우 불리한 정황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경찰은 이것을 거꾸로 뒤집었다. 여기서 손 대표가 말했던 ‘책임자 회의’가 과연 있었는지 수사해봤더니 그런 회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언론사에서 직장 생활 35년 했다. ‘책임자 회의’ 이게 과연 무엇인가. 손석희 씨는 JTBC 대표였고, 지금도 대표다. 회사의 본부장, 국장, 실장 같은 임직원 10여명을 대회의실로 불러서 회의 개막을 선언하고, 어떤 실무자가 메모를 시작하고, 일지를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을 ‘책임자 회의’라고 하는가? 아니면 회사 대표가 관련 임원이나 본부장 두세 명에게 전화를 걸든지 아니면 대표 방으로 잠깐 오라고 해서 이런저런 월 1000만 원짜리 일자리 마련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지시하는 게 ‘책임자 회의’인가? 경찰은 JTBC 관계자 진술, 그리고 손 대표가 제출한 휴대전화를 분석했더니 ‘책임자 회의’가 없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경찰은 바보인가. 어떤 JTBC 내부 사람이 규정하기도 모호한 ‘책임자 회의’가 있었다고 진술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나누려고 대표 방으로 임직원을 부를 때 휴대 전화로 부르는가? 경찰은 그렇게 하는가? 요즘 내부 통신망 없는 회사가 어디 있으며, 이 정도는 내부 전화로도 충분하고, 아니 대표가 임직원 부를 때는 대개 십중팔구 비서가 부른다.

경찰은 매우 친절하게도 손석희 대표에 대해서 배임미수 혐의가 있는지 알아보고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까지 여러 배려를 해줬다.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었는지, ‘실행 착수’가 있었는지, ‘책임자 회의’가 있었는지, 경찰은 정말 손석희 대표의 변호사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정밀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 느낌이다. 백 번 양보해서 손 대표에게 ‘실행 착수’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배임미수죄가 안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프리랜서 기자 김웅 씨의 공갈죄 역시 실행 착수의 증거가 있는지 따져봤어야 하지 않을까. 김웅 씨가 손석희 대표의 이런저런 행동들, 그러니까 폭행이든, 뺑소니든, 불륜이든, 뭐가 됐든, 손 대표가 감추고 싶어 하는 행동들을 소상하게 폭로하는 문건을 만들고, 그것을 봉투에 넣어 언론사에 배포하려는 준비를 갖추었는지, 그런 ‘실행 착수’의 행동을 했는지 따져봐야 할 것 아닌가.

‘김광일의 입’은 손석희 씨든, 김웅 씨든 일면식도 없다. 아무런 개인감정도 없다. 다만, 올해 상반기 워낙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고, 아직도 미진한 의혹이 남아 있고, 아직도 그날 밤 늦은 시각 과천 주차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의 입방아가 그치질 않고 있고, 맞고소 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와 결과 발표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기를 바랐을 뿐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겠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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