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이 뺨 때리고 발로 차도… 경찰 진압장비 사용 '주저'

곽래건 기자 김은중 기자
입력 2019.05.21 03:05

'구로동 여경 사건'으로 본 경찰 물리력 행사 문제점

"여성 경찰관이 남성 취객을 제대로 진압 못 했다"는 논란에 대해 경찰과 전문가들은 20일 "이번 사안은 '여경(女警) 사건'이 아니라 경찰이 취객에게 뺨 맞은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관이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핵심이 아니라 공무 집행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상대로 경찰이 제때 물리력을 행사 못 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술집 앞에서 취객 허모(53)씨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찰관에게 욕설하며 뺨을 때렸다. 발로 차기도 했다. 일행인 장모(41)씨는 허씨를 연행하려는 경찰을 붙잡아 끌어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남성 경찰관은 삼단봉,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여성 경찰관은 삼단봉과 테이저건을 휴대 중이었다. 취객이 몸으로 덤비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진압 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에선 경찰관 몸에 손대는 것 자체가 범죄라 아예 상대방이 접근을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화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같은 상황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경찰이 경찰봉으로 남성을 때려 진압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경찰은 원칙적으로 피의자보다 한 단계 높은 물리력을 쓰는 것이 허용된다.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의 '무기 사용 기준표'에 따르면 주먹을 휘두를 경우 전기충격기나 가스총을 사용할 수 있고, 칼을 들고 있으면 총을 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저항하는 피의자에게 위협을 느낀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생긴 우발적 결과에 대해 법원도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법원은 경찰관이 현장에서 위협을 느꼈는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법관의 사후 판단보다 경찰관 개인이 현장에서 얼마만큼의 위협을 느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현장에서 물리력 행사를 주저하게 된다는 경찰관이 많다. 한 경찰관은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소송을 당하거나, 징계를 당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는 "경찰관이 소송을 당하면 미국 등에선 전담 팀을 꾸려 지원해주지만, 한국에서는 경찰관 개인이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현장 경찰이 적극적이긴 어렵다"고 했다.

물리력 사용의 구체적 기준도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경찰관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만 돼 있다. 총기와 수갑을 제외하면 장비 세부 규정도 없다. 영국 경찰 등은 장비별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 규정이 모호한 데다 현장 재량권이 적다 보니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경찰관을 때리거나 경찰관 업무를 방해하는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법원 처벌도 약하다. 공무원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면 법적으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약 10% 수준이다.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된다. 반면 미국은 경찰관을 때리거나 다치게 하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독일도 위험한 물건으로 위협을 가하면 경찰관 부상 여부와 상관없이 강하게 처벌한다.

정치권이 과거 경찰의 인권 탄압이나 일부 경찰의 비행(非行)을 강조하면서, 경찰을 '국민의 자유·권리를 침해하는 비인권적 기관'으로 묘사하는 것도 경찰 불신(不信)을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정부나 정치에 대한 불만을 공권력의 말초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 분풀이성으로 표출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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