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김정숙 vs 황교안, 누가 이겼을까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9.05.20 23:34

광주 5·18 기념식장에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다른 당 대표들과는 악수를 나누었는데 유독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악수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는 이른바 ‘김 여사의 황 패싱 논란’, 양측 주장에서 공격성 비방을 걷어내고 오로지 팩트만 따져보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런 기념식장에서 대통령 내외는 통상 청중석 맨 앞줄에 있는 인사들과 악수를 나눈다. 이날도 맨 앞줄에는 원내 1당이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 이어 원내 2당이자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 이어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여기서는 팩트만 말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해찬 대표, 황교안 대표, 손학규 대표와 차례로 악수를 하고 수인사를 나눴다. 특히 황교안 대표에게 문 대통령은 "잘 오셨다"고 했고, 황 대표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을 뒤따르던 김정숙 여사는 이해찬 대표와 악수를 나눈 뒤 바로 곁에 있는 황교안 대표를 건너뛰고 손학규 대표와 악수를 했다. 황교안 대표를 그냥 지나친 것이다. 여기까지는 청와대도 부인하지 않는 팩트다. 그 다음을 보자. 현장에 있었던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정숙 영부인은 (황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은 채 황 대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황 대표 좌측으로 넘어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에게 악수를 청했다." "김정숙 영부인께서 황 대표에게는 왜 악수를 청하지 않고 뻔히 얼굴을 지나쳤을까요."

민경욱 대변인 말 중에 팩트로 확인된 부분과,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나눠봐야 한다. 팩트는 김정숙 여사가 황교안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는 부분, 그리고 ‘그냥 지나쳤다’는 부분, 이 두 가지는 팩트다. 그러나 ‘황 대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는 부분은 논란이다. ‘빤히 쳐다봤다’는 표현은, 김정숙 여사가 현장에 서 있는 황 대표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고의적으로, 일부러, 그를 인격적으로 무시했다는 뜻이 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매우 무례한 행동이 된다. 그래서 청와대 해명과 부딪치며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청와대 해명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는 중이었고, 문 대통령의 속도에 맞춰서 걷다 보니 악수를 하지 않고 지나가게 된 것."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일 뿐, 일부러 황 대표와의 악수를 건너뛴 것은 아니다." 이 말 속에도 팩트는 있다. ‘함께 입장하는 중이었다’ ‘대통령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이 두 부분은 팩트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이 두 부분은 논란이다. 김 여사의 행동이 고의적이었는지를 판단하는 부분인데, 이 두 표현은 청와대 관계자의 주관적 생각이기 때문이다.

‘김광일의 입’은 이렇게 본다. 김정숙 여사가 아무리 대통령 속도에 맞춰 걷는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다소 거리가 떨어질 때도 있고 바싹 붙게 될 때도 있다. 불과 2,3초 차이일 것이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본인만 알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볼 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부분은 아니 한 것만 못한 해명이 되고 말았다. 굳이 청와대가 해명을 한다면, ‘정답 해명’은 이렇다. "그날 김정숙 여사가 본의 아니게 황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지 못했다. 다른 뜻은 없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청와대는 그렇게 말할 줄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 지금과 같은 여야 대치 국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청와대가 성숙한 정치를 이끌고 싶다면, 청와대 참모들은 5·18 행사장에 앞서 김정숙 여사에게 이렇게 진언했어야 옳다. "다른 분은 몰라도, 황교안 대표에게만은 꼭 인사를 건네주십시오." 김정숙 여사 입장에서는 야당이 대통령인 남편에게 ‘좌파 독재’라고 했으니 야당 대표에게도 좋은 감정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김 여사가 남편이 하지 못하는 여야 협치를 풀어나갈 수 있게 내조를 하고 싶었다면, 황교안 대표를 만난 그 자리가 좋은 기회였다. 더구나 5·18 행사장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부인의 행동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족 하나 덧붙인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이런 말도 했다. "페이스북 친구가 댓글로 깨우쳐주기 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김정숙 영부인이 황교안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은 것이 ‘쳐다보지도, 말을 섞지도, 악수도 하지 말라’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지령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것을." 김정숙 여사가 황교안 대표에게 악수를 하지 않은 것은 유시민 이사장의 지령이었다는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 발언도 매우 문제적이다. 다음에 기회를 잡아서 본격적으로 다뤄보겠다. 그러나 민경욱 대변인도 ‘지령’이란 표현까지 쓴 것은 너무 했다.

자유 시민들께서는 댓글창에서 맘껏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 공개석상에서 하는 발언은 댓글창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숙 여사의 황 대표 패싱, 그리고 이어서 대통령이 야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지칭한 듯한 기념사 표현들, 정말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아 몹시 답답하고 우울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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