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5·18 기념식

이동훈 논설위원
입력 2019.05.20 03:16

5·18 이 국가기념일이 돼 정부가 기념식을 주관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김영삼 정권에서 5·18 재평가가 이뤄진 결과다. 첫 기념식에 대통령 대신 고건 총리가 참석했는데 "오늘을 계기로 모든 국민이 관용하고 화합하는 출발점이 되자"고 기념사를 했다. 그런데 기념식이 끝난 뒤 YS 정권을 규탄하는 대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김 대통령 화환이 쓰러졌다. 첫 기념식 풍경이었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처음 참석한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다. 직접 관련자이기도 한 DJ는 "만감이 교차한다"며 기념사를 읽어내려 갔다. 그런데 전날 '386운동권' 출신 민주당 의원 등이 광주에서 술 파티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운동권 정치인들의 민낯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기념식 참석은 2001년 이회창 총재가 처음이었다. 대학생 몇몇이 "반통일 세력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친 것 외엔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야당 대표인 2004년 처음 참석했는데 그를 대하는 지역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기념식장을 찾았다가 '대미 굴욕외교 사과'를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 때문에 뒷문을 통해 입장하고 빠져나가는 일이 있었다. 보수 정권 들어서는 기념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늘 논란이었다. 이전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제창'이었는데 식전 행사로 밀렸다가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으로 바뀌었다. 5·18 단체들이 반발했고 행사 불참, 별도 기념식 진행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 뒤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18일 광주에 내려간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한국당을 공격했다.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현실이 부끄럽다"고 했다. 조국 수석은 야당을 향해 "괴물이 되진 말자"고 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5·18 단체 회원들의 육탄 항의와 "물러가라"는 구호를 마주해야 했다. 물병과 플라스틱 의자가 날아들었다. 한국당 측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기념식장에서 황 대표와 고의로 악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 기념식도 시끄럽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살풍경은 아니었다. 화합이란 말이 사라진 채 반쪽이나 다름없는 행사가 됐다. 올해는 5·18 39년으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도 아닌데 유난히 크고 소란스러운 추모식이 됐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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