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어둠이 있기에 스타는 더 빛난다

강호철 스포츠부장
입력 2019.05.20 03:15

두 차례 부상 딛고 최고 된 류현진, '꼬부랑 한국말' 입에 밴 박찬호
이상화는 왜 빨리 은퇴 못 했을까… 그들은 비아냥 대신 박수 받아야

강호철 스포츠부장

LA 다저스 투수 류현진은 올해 '언히터블(Unhittable)'에 가깝다. 유인구 위주 피칭으로 보는 사람 가슴을 졸이게 하던 1, 2년 전과는 달리 어디 한번 칠 테면 쳐보라는 듯 자신 있게 승부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류현진은 2005년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때 모교 동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받았다. 동대문야구장에서 그가 공 던지는 모습을 직접 본 기자가 상위 지명권을 가진 프로구단 스카우트에게 '무조건 최우선 지명 후보'라고 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스카우트는 왼쪽 팔꿈치를 들어 보이며 "한두 해 하고 사그라질 선수를 왜 뽑느냐"고 했다.

류현진은 고교 2학년 때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1년 가까이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인천 집에서 매일 서너 시간씩 지하철 신세를 졌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에게도 힘들다는 기색 한번 없었다고 한다. 4년 전 당했던 어깨 부상은 미국 현지 전문가들이 완치 확률을 약 7%로 볼 정도로 재기가 불투명했다. 묵묵히 재활에 전념하던 그에게 사람들은 '역시 담배, 술 이기는 장사 없다' '사인도 안 해주는 선수, 너는 끝났어' 하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다. 이미 깊은 어둠 속에 한 번 있어 봤기에 밝은 빛의 소중함을 마음에 담고 난관을 이겨냈을 것이다.

한국인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따낸 박찬호가 1996년 귀국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미국 생활 3년 만에 돌아온 그의 입에서 어눌한 한국말이 쏟아져 나왔다.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혀가 꼬부라졌나, 외국 물 좀 먹더니 미국 사람 된 줄 아나' 같은 반응이 나왔다.

박찬호가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마음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마주친 것은 자신 못지않은 잠재력을 지닌 수많은 경쟁자, 생경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공공연한 인종차별이었다. 눈물 젖은 빵과 라면을 먹으며 외롭게 마이너리그 시절을 버텨냈던 박찬호는 훗날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선 말부터 현지인처럼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한국 풍토에서 자란 그가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지 눈에 선하다.

박찬호는 이제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 소리를 듣는다. 사람과 만나면 쉴 새 없이 말 보따리를 늘어놓는다. 미국 생활에서 유색인종 대우를 받고 '반(半)벙어리' 신세로 지내면서 놓쳐버린 삶을 뒤늦게 보상받고 싶은 것 아닐까.

며칠 전 '빙속 여제' 이상화가 공식 은퇴했다. 그가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 1년 넘어서야 은퇴를 밝히자 '그럴 거면 진작 하지, 왜 시간을 끌었느냐'는 소리도 나온다. 달라진 외모나 연예인과의 교제설 등이 부정적인 시선에 칼날을 더했다.

아시아 선수론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2연패(連覇)를 이룬 이상화는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달리려 했지만 무릎이 말이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 무릎 연골이 거의 닳아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끊임없이 물이 찬다. 종아리 부상과 하지정맥류도 선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수술하면 선수 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재활과 약물 치료로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청춘을 바친 얼음판을 떠나겠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뼈를 깎는 아픔을 참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닐까.

스포츠 스타들의 성공적인 삶 뒤에 묻어놨을 어두운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비아냥 대신 박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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