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문재인 정권을 위한 촛불이 아니었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2019.05.18 03:07

촛불은 문재인 정권 소유물도 한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자유·상식·소통·염치 등 촛불의 가치는 간 데 없고 북한 이슈만 넘쳐
세금 맘대로 쓰라는 면허를 촛불은 준 적이 없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인과 설정의 오류(post hoc ergo propter hoc)'라는 논리적 오류가 있다. 앞에 벌어진 일이 뒤따른 일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닭이 울자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닭이 울어서(원인) 아침이 왔다(결과)고 한다면, 어리석은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무질서한 현상에서 질서를 찾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일을 인과관계로 묶어 해석하는 오류를 수도 없이 범하며 산다.

폭풍처럼 촛불이 지나간 빈자리에 지금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나는 별로 잘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지금 정부가 실력과 명분으로 일궈낸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그냥 야당'이었고, 여당과 함께 촛불 민심에 끌려다닌 무능한 정치권의 한 축에 불과했다. 당시 사람들은 청와대 안팎의 국정 농단에 분노해 촛불을 들었지, 야당을 지지해서 촛불을 든 것이 아니었다. 무릇 세상의 모든 시민혁명은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목적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혁명 후 뒤따르는 극심한 혼란과 권력 공백이 이를 웅변한다.

소위 '촛불 혁명'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무능한 야당에서 도덕성으로 무장한 촛불 정권으로 재빨리 변신하더니 정책으로 가르치고 역사로 훈계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사회 평론가 버크(Burke)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적폐'라는 소품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벤트에 능한 문재인 정부가 새 정부를 '포지셔닝'할 홍보 포인트로 촛불 같은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촛불'을 정부의 수식어로 걸고, 청와대에는 대형 촛불 그림을 걸었다. 그게 마치 닭이 울어 날이 밝았다는 말처럼 들리긴 했지만, 순서야 어찌 됐든 그들이 잘해주길 바랐다. 이 땅에 괜찮은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다면 그 또한 못 참을 허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지난 지금, 순서를 복기하는 이유는 촛불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흔드는 정부와 대통령 때문이다.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대통령은 '독재자' 질문을 받고 답변 대신 "촛불 정부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하며 피해 갔다. 청와대는 "촛불 혁명에 의해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를 반복 재생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모두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다. 촛불은 문재인 정권 소유물이 아니며, 한곳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촛불 정부라고 해서 다를 줄 알고" 소신을 밝혔다 낭패를 본 신재민 전 사무관을 시작으로, 현 정부를 지켜보며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인터넷 민심이 그 증거다. "내 돈으로 핫팩 사고 촛불 사서 나눠 주었는데 이런 일을 보려고 했나" "이제 생각하니 과거 블랙리스트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손혜원에 비하면 최순실은 양반이다" "촛불 어부지리 정부"….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지금 '이건 나라냐'며 반문하고 있다.

촛불은 자유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시도했다. 촛불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보수 궤멸을 공언했다. 촛불은 상식이었다. 촛불이 바란 정치는 G7 수준도 아니었고, 딱 국민 눈높이만큼(이라도) 맞춰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눈높이에 어긋나는 공직자들을 줄줄이 임명했다. 촛불이 원한 건 소통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각종 정책을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가기만 한다. 촛불이 구한 건 염치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 주변 사람들은 도무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촛불 그 어디에도 '북한'은 없었다. 핵이건, 인권이건, 북한 관련 이슈가 촛불의 주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놀라운 속도와 소신으로 북한 드라이브를 실행하고 있다. 대동강 수질을 걱정하고, 남한 산불이 북한으로 옮겨붙을까 염려하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인도적 식량 지원에 골몰한다. 촛불은 국민 세금을 맘대로 쓰라는 면허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세금 씀씀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촛불은 지금 정부와는 무관하게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정부도 여론을 독점하지 못한다. 지금 정부가 조금 더 겸손했다면, 조금 더 열려 있었다면, 그리고 촛불 민심이 제 것인 양 으스대지 않고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하며 모든 국민을 살폈다면, 2년 전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위해 이런 뻔한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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