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돈 주고 사형당할 뻔한 목사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9.05.18 03:05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북한은 지난 2015년 1월 캐나다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를 억류하고 '국가 전복 음모'를 이유로 사형을 구형했다. 임 목사는 실제 재판에선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임 목사 지인들과 설교 영상 등에 따르면 그는 잡히기 전까지 150여 회나 북한을 드나들며 교회 헌금 등을 모아 5000만달러(약 590억원)에 달하는 대북 지원을 했다. '고난의 행군' 시대를 거치면서 배고픔에 죽어가는 어른과 아이들을 직접 본 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국가 전복 혐의로 잡힌 것은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이 아닌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설교한 동영상 때문이었다.

임 목사는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이 아프면 병원도 못 가는 상황이 안타까워 의료 보험료를 지원하고 북한 대사를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여행시켜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경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던 것이 나중에 모두 '회유 혐의'로 재판에 올라왔다. 임 목사는 31개월간 강제 노동을 한 뒤 2017년 8월 풀려났다.

임 목사가 감옥에 갔을 때 그를 담당한 책임자는 "어떻게 우리 수령님을 모욕할 수 있느냐"며 "법이 당신을 살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 사람이면 그냥 처형하겠지만 국적이 캐나다인이라 못 죽인다는 것이다. 김씨 일가 대신 예수를 믿으란 말이 북한 체제에선 '죽을죄'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임 목사는 한 설교에서 "북한에서 1만명의 고아를 지원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억류되면서 고아에 대한 지원도 끊겼다.

590억원을 지원하고 수많은 고아를 돌봐줘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은 임 목사를 잡아들이면서 1만명에 달하는 고아의 배고픔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이 마치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임 목사의 사례를 보듯 인도적 지원만으론 북한에 어떤 정치·사회적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식량 지원이 북한의 변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망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사악한 체제이지만 주민들은 죄가 없다. 개인적으론 북한의 기근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정치적 고려 없이 긴급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지원은 정말 착취받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물품으로 한정돼야 한다. 임 목사도 쌀은 북한 상류층만 먹는 것을 알고 식량 지원은 옥수수로만 했다.

북한에 대한 지원으로 김정은이 변할 것이란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지원은 김정은 정권과 대화가 아니라 오로지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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