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키우는 법, 시대가 달라졌으니 배워야죠"

남정미 기자
입력 2019.05.16 03:29

[아이가 행복입니다]
서대문구와 가천대 세살마을연구원, 무료로 양육법 알려주는 '조부모 교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 3층 강의실에 지금 손주를 키우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 40여 명이 모였다. 강사가 "손주 키울 때 언제가 제일 힘드냐"고 묻자, 황정애(67)씨가 "잘 먹고 잘 자고 그러면 아주 예쁜데 이유 없이 울 때가 제일 힘들고 맘 아프다"고 했다. "아들딸을 다 키워 봤는데도 그러네요."

황씨는 4년째 손녀딸 승아(5)양을 키우고 있다. 자식 키울 때와는 또 달라 이날 '손주 키우는 법' 강의를 들으러 왔다. 황씨는 "우리 때와 시대도 달라졌고, 아이 키우는 게 많이 다르지 않으냐"며 "딸이 한번 가보라고 해서 강의를 신청했다"고 했다. 황씨는 대학 강사인 딸의 경력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손주 돌볼 결심을 했다. 딸이 출근하면 황씨가 딸 집으로 가 손녀를 돌본다.

"남에게 맡기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고…. 딸이 열심히 공부한 게 아깝잖아요. 제가 옛날에 키워줄 사람이 없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는데, 그게 그렇게 서럽더라고요. 딸은 그런 일 겪지 않기를 바랐죠."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 강의실에서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와 곧 손주를 보게 될 예비 조부모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조부모 40여 명은 ‘행복한 조부모 되기’를 주제로 안전사고 대처법, 손주와 대화하는 법 등에 대해 배웠다. /남정미 기자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는 2006년 39%에서 2010년 41%, 2014년 42%, 2017년 45%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결혼 1년 차 초혼 신혼부부 기준으로 하면 비중이 더 높아진다(51.3%). 육아정책연구소는 미취학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 열 쌍에 여섯 쌍 이상(63.6%)이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는 믿고 맡길 수 있고,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친척들과 정을 쌓을 수 있어 좋지만, 실제로 육아를 맡은 조부모와 친·인척 입장에선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아이 키우느라 몸만 힘든 게 아니라 육아 방식을 놓고 가족끼리 마음 앓이를 하기도 한다.

이날 강의는 가정에서 일어나기 쉬운 안전사고 대처법, 조부모 건강관리법 등을 다뤘다. 강사가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자 "얼음을 가져다 댄다" "119를 부른다" 같은 대답이 곳곳에서 나왔다. 강사가 웃으며 "흐르는 찬물에 화상 부위를 식히는 게 첫째지만, 만약 몸의 20% 이상 화상을 입었다면 병원으로 먼저 달려가시라"고 정답을 알려줬다.

아들 내외를 대신해 퇴직한 남편과 함께 네 살 쌍둥이 손녀를 키우는 이영옥(66)씨도 오전 일찍 손녀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남편과 나란히 강의를 들으러 왔다. 이씨는 "손주 키우는 조부모가 많아지는 만큼 이런 교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부모 교육’에 참여한 황정애(67)씨가 남편, 손녀 승아(5)양과 함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황정애씨 제공

이번 강의는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와 가천대 세살마을연구원이 함께 준비했다. 세살마을은 임산부 교실 등 부모 교육을 주로 해왔는데, 손주 키우는 조부모가 많아지면서 2011년부터 조부모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손주를 키우는 데 적합한 양육 방법을 지원하고,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조부모 2만391명이 강의를 들었다. 손한결 세살마을 연구원은 "손자녀 양육법부터 조부모의 신체·정신적 건강까지 돌아볼 수 있다"며 "교육에 참가하는 조부모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했다.

강의 마지막에 강사가 "손주 키울 때 언제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손주 생각만 해도 좋은지 할머니·할아버지들 얼굴이 환해졌다. "재롱부릴 때" "건강하게 잘 클 때"란 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한 할머니가 "이제 4개월 됐는데 웃기 시작한다"고 하자, 다른 할머니들이 "그때 참 예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주최 측'인 문석진(64) 서대문구청장은 "저도 오는 11월 손주를 보는 예비 할아버지"라고 했다. "요즘 세대가 원하는 육아법과 부모 세대의 경험이 합쳐지면 일하는 자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손주들에겐 할아버지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선일보 A31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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