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29] 카르타고에 패하기 직전의 로마… 재력가들이 배 200척 몰고 나타났다

메시나=송동훈 문명탐험가
입력 2019.05.16 03:26

시칠리아의 메시나 해협

메시나(Messina)의 사절이 로마에 나타난 건 기원전 265년이었다. 사절은 로마의 동맹이 될 것을 자처했다.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원로원은 당황했다. 당시 메시나는 시칠리아섬의 맹주인 시라쿠사에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를 지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메시나의 지배층은 카르타고와 로마 둘 중 하나에 의탁하기로 결정했다.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패자(覇者)였고,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막 통일한 신흥 강국이었다. 메시나의 최종 선택은 로마였다.

원로원의 고민은 깊었다. 제안을 거절하면 메시나는 카르타고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제안을 받으면 카르타고와의 분쟁이 불가피했다. 로마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분쟁이 두려울 리 없다. 문제는 건국 이래 50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이탈리아 중심의 국가 정책의 변화였다. 반도를 떠나 바다를 건너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뜻했다. 원로원은 민회로 결정권을 넘겼다. 그리스 세계의 영웅 피로스 왕을 몰아내고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시민들은 원로원보다 과감했다〈2019년 5월 2일 자 세계문명기행 28회 참조〉. 로마는 '모든 이탈리아인에 대해서는 로마가 보호권을 갖는다'는 명분하에 메시나의 제안을 승낙했다. 로마의 군대가 시칠리아를 향했다. 지중해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었다(몸젠의 로마사).

서지중해의 패자 카르타고

메시나 해협은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을 연결한다. 시칠리아의 메시나항(港)과 반도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Reggio di Calabria)항이 두 관문이다. 두 도시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이 건설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700년 동안 배가 오가며 두 도시 사이를, 반도와 섬 사이를 잇고 있다. 그래서일까? 레조 디 칼라브리아에서 정기 여객선을 타고 메시나로 향하면 깊은 향수(鄕愁)에 잠기게 된다. 그리스인도, 페니키아인도, 로마인도, 사라센도, 노르만인도, 아라곤인과 프랑스인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 해협을 건넜다. 시기와 배의 형태가 다를 뿐이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끝과 시칠리아섬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메시나의 항구 전경. 고대부터 중요한 항구였던 이곳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해외 영토로, 로마는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지중해를 자신들의 호수로 만든 거대 제국으로의 전진을 시작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탈리아 반도의 끝과 시칠리아섬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메시나의 항구 전경. 고대부터 중요한 항구였던 이곳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해외 영토로, 로마는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지중해를 자신들의 호수로 만든 거대 제국으로의 전진을 시작했다. /Getty Images Bank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 해협을 건넜던 무수한 제국의 목적도 유사했다. 정복과 지배! 시칠리아가 지정학적으로 지중해의 심장에 해당했기에 이 섬을 향한 강대국들의 욕망은 더욱 컸다.

시칠리아의 도시 대부분은 그리스인들이 세웠다. 일부는 페니키아인들이 만들었다. 두 민족은 지중해를 무대로 활약했다. 기원전 3세기 서지중해의 패자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튀니스에 위치한 카르타고였다. 페니키아의 식민 도시로 출발했으나 뛰어난 지정학적 위치를 토대로 급성장했다. 이 무렵에는 고향인 시리아·레바논 해안 도시국가들의 위세를 능가하는 해양 강국이 됐다. 그런 카르타고에 시칠리아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라쿠사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계 도시들과의 오랜 투쟁을 통해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의 절반 정도를 손에 넣었다(기원전 275년). 이 와중에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로마가 해협을 건너 메시나를 세력권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카르타고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두 강대국은 충돌했다.

두 강대국의 충돌

육지에서 최강이었던 로마군은 손쉽게 시칠리아를 장악했다. 그러나 카르타고를 섬에서 완전히 내몰지는 못했다. 제해권이 카르타고에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는 바다를 통해 해안가에 위치한 강력한 요새에 물자를 보급했다. 동시에 로마와 로마 동맹국들 간의 해상 무역을 마비시켰다.

함대가 없는 로마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전쟁 발발 전에 카르타고의 외교 사절이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로마인은 바다에 손도 못 담근다'고 했다는 경고가 현실화됐다. 결국 카르타고를 굴복시키고 시칠리아를 온전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해전이 불가피했다. 바다에서 싸우려면 전함이 필요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있는 카르타고의 옛 모습. 로마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패권 국가였으나 메시나와 시칠리아를 두고 로마와 벌인 1차 포에니 전쟁에서 결국 패배했다. /Getty Images Bank
로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즉각 함대 건설에 돌입했다. 전함을 건조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좌초한 카르타고 군선을 가져다 본떠서 만들었다. 힘든 과정이었다. 카르타고에 적대적인 그리스 식민 도시 시라쿠사나 마르세유의 도움을 받았다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로마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제국을 꿈꾸는 자가 국방을 남에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로마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120척의 전함을 진수시켰다(기원전 260년).

로마의 과감한 결단과 놀라운 실행 앞에 카르타고는 주눅 들었다. 바다를 지배해 온 수백 년 세월이 무상할 만큼 카르타고는 연전연패했다. 자신감을 얻은 로마는 아프리카를 침공했다. 카르타고를 직접 공격해 전쟁을 일거에 끝내겠다는 대담한 작전이었다. 카르타고는 전의를 상실하고 강화를 청할 정도로 궁지로 내몰렸으나 결국에 대승을 거뒀다(기원전 255년). 로마군 사령관 레굴루스가 거듭되는 승리에 자만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로마군은 아프리카에서 철군하는 과정에서 폭풍으로 함대의 4분의 3을 잃었다. 역시 바다에 무지한 사령관이 노련한 함장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강행한 탓이었다.

로마의 판정승

전선은 다시 시칠리아로 옮겨왔다. 두 강대국은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로마는 시칠리아 내 카르타고 영토의 핵심 도시인 팔레르모를 점령하면서 다시 승기를 잡았다.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 건 전선에 막 투입된 새 집정관 클라우디우스의 무모한 드레파눔 기습이었다. 오늘날 시칠리아 서부 트라파니 인근에 위치한 드레파눔은 카르타고 함대의 정박지였다. 미숙한 로마 사령관의 경솔한 공격은 노련한 카르타고 제독의 침착한 수비에 막혀 대재앙이 됐다(기원전 249년).

이제 로마와 카르타고 모두 지쳤다. 로마 원로원은 차마 15년 이상 끌어온 전쟁을 그만둘 용기가 없었기에 하릴없이 6년 세월을 허비했다. 카르타고는 상황이 좀 나았다. 젊은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스 때문이었다. 진정한 장군이었던 하밀카르는 용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소규모 함대로 로마의 해안 지대를 약탈해 군자금을 마련했다. 시칠리아의 로마 세력권은 하밀카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패전을 눈앞에 뒀다고 생각한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로마의 몇몇 재력가들이 사재를 털어 전함 200척과 선원 6만명으로 구성된 대함대를 편성해 국가에 자발적으로 헌납한 것이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밀카르의 소함대는 로마의 대함대에 압도됐다. 카르타고 본국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보급 함대를 시칠리아로 보냈다. 로마 함대는 오늘날 시칠리아 서부 파비냐나섬 근처에서 이 보급 함대를 수장시켰다. 카르타고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지중해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로마는 승리했다(기원전 241년).

23년 전 해협을 건너 메시나로 향할 때, 로마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바다를 무대로 싸워본 적 없는 그들에게 메시나 해협의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는 두려움 자체였을 것이다. 로마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해협을 건넜다. 그 후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이겼다. 구성원들의 용기가 비겁을, 헌신이 탐욕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는 가까스로 이겼기에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북쪽에서 새로운 겨울이 다가올 운명이었다.

중세의 메시나는 십자군 원정 출발점
1571년 레판토 해전 앞두고 신성동맹 함대 집결하기도

"우린 메시나를 거쳐서 간다."

레판토 해전도. 메시나를 출발한 신성동맹 해군은 오스만 튀르크 해군을 격파함으로써 지중해 전체가 이슬람 세력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냈다. /위키피디아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년)에서 기사이자 영주인 '고프리(리엄 니슨)'가 프랑스에서 만난 아들 '발리안(올랜도 블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설명한 대사다. 영화 묘사대로 중세의 메시나는 십자군 원정의 출발점이었고, 서유럽과 성지(聖地)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십자군 가운데 가장 화려했던 3차 십자군의 주역인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한 곳도 메시나였다.

1571년 동지중해를 장악한 후 서지중해를 넘보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해군에 맞서 스페인 제국과 베네치아가 연합해 결성한 신성동맹의 대함대가 집결하고 출전한 곳도 메시나였다. 이곳에서 출발한 신성동맹 함대는 레판토에서 오스만튀르크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둬 그들의 서진을 막았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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