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볼턴의 세상… 트럼프도 그 안에 살고 있다"

원우식 기자
입력 2019.05.16 03:01

이란과 군사적 긴장 고조, 베네수엘라 쿠데타 지원…
美, 대외정책서 강경한 군사개입 카드 수시로 꺼내 들어

/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쿠데타 시도 및 군사개입 검토,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 고조….

최근 미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대외정책이 군사적 충돌 위기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강경해지고 있다.

미 정가와 언론은 그 배후로 존 볼턴(70·사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주목하고 있다. 대외 군사 개입을 꺼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이 짜놓은 판에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와 백악관이 최대 12만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對)이란 군사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란과의 전쟁은 40만명이 사망한 이라크 전쟁보다 훨씬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비역까지 포함한 이란 군병력은 이라크보다 2배이고, 이란 인구(8200만명)도 이라크의 세 배에 달한다. 미국의 대규모 파병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폭탄급 뉴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가짜 뉴스"라고 '전쟁설'을 진화했지만, "보낸다면 그보다 더 많이 보낼 것"이라고 호언했다.

NYT는 이 '12만 파병설'이 볼턴 보좌관의 요구라고 전했다. AFP통신도 이날 "볼턴의 지휘 아래 전쟁의 북이 둥둥 울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볼턴은 평소 "이란 핵 문제는 폭격이나 정권교체로만 해결 가능하다" "이란 혁명 40주년(2019년 2월) 전에 정권을 엎어야 한다"란 말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5일 항모전단과 폭격기를 중동에 파견한다는 것도 볼턴의 성명을 통해 발표됐다.

볼턴이 물고늘어지는 건 중동의 이란뿐만 아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최근 마두로 축출을 위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베네수엘라 사태 개입도 볼턴의 의지였다. 베네수엘라와 쿠바, 북한은 그의 '톱 리스트'에 올라 있다. 모두 반미(反美) 독재정권이 핵개발 등으로 무력시위를 하는 국가다. 볼턴은 2018년 3월 백악관에 들어온 뒤 선(先) 핵폐기를 전제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 북한을 격분시켰다. 지난 1월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가 일자 '콜롬비아에 5000명 병력 파견'이라고 쓴 메모패드를 옆구리에 끼고 나와, 군사 개입 카드를 노골적으로 흘렸다.

볼턴은 1980년대 레이건 때부터 보수 정권마다 중용됐던 정책 브레인으로, '국제 질서는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른다'는 신념 아래 외교 협상보단 군사적 해법을 선호하는 인물이다. 미국 진보 진영에선 '전쟁광'으로 표현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입지는 확고하다. 뉴요커에 따르면 가난하고 보수적인 소방관의 아들인 볼턴은 예일대에 다니며 '물렁한 부잣집 엘리트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군사 개입에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걸었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는 사실상 '고립주의'로, 아프간·시리아에서 철군하겠다는 게 핵심 공약이었다. 북핵도 최대한 김정은과 친분을 바탕으로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이고,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도 내심 꺼린다.

그러나 실제 대외 정책은 대부분 볼턴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났고, 이란 등 적성국에는 연일 강경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LA타임스는 14일 "지금은 볼턴의 세상이고, 트럼프는 그 안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도 "요즘 트럼프의 세계관은 볼턴의 관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볼턴의 전임자인 허버트 맥매스터 전 NSC 보좌관도 최근 볼턴을 겨냥해 "일부 참모가 대통령을 조종하면서 헌정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웬디 셔먼 전 미 국무차관은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과 관련, "트럼프가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는 볼턴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쳐 전쟁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는 이를 부정한다. 트럼프는 9일 기자들에게 "정부엔 볼턴 같은 이도 있고 유화파도 있다. 결정은 대통령인 내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볼턴에게 끌려다닌다기보다는, 강경 메시지가 필요한 사안과 국면을 가려 볼턴을 내세우는 것으로 본다. 로버트 거트맨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AFP에 "트럼프는 전쟁을 꺼리지만, 볼턴이 그가 동경하는 '강함과 거침'을 대변하기 때문에 필요로 한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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