毒이 꽃이 되고, 집이 있어도 떠도는… 인간 삶의 아이러니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9.05.15 03:01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 최수철·김인숙, 신작 장편 출간

장편소설 '독의 꽃'을 낸 최수철(위)과 신작 '벚꽃의 우주'로 돌아온 소설가 김인숙. /이명원 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가 배출한 소설가 최수철(61)과 김인숙(56)이 나란히 장편소설을 냈다. 1981년 당선자 최수철과 1983년 당선자 김인숙은 지난 연말 본사 신춘문예 심사를 함께 맡은 데 이어 새 소설도 발맞춰 출간했다. 최수철은 '독의 꽃'(작가정신)을, 김인숙은 '벚꽃의 우주'(현대문학)를 선보였다. 최수철 소설은 독(毒)에 관한 연구에 바탕을 뒀고, 김인숙은 다중우주를 비롯한 우주론에서 착상을 떠올렸다. 묘하게도 두 작품 모두 심리소설과 추리소설을 뒤섞었다.

최수철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패러디해 신작 제목을 '독의 꽃'으로 정했다. 독에 대한 세상의 모든 지식을 화려하게 펼쳐놓으면서 인간의 삶에서 악이 지닌 의미를 기발하게 조명했다. 장편 '침대'(2011년)에선 침대를 통해 인간과 역사를 탐구했고, 장편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2014)에서 의자를 통해 온갖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데 이어, 이번엔 독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독성 물질에 감염돼 입원한 '나'가 병실을 같이 쓰게 된 사내 '조몽구'의 기이한 삶을 알게 되곤 그 삶을 광인일기(狂人日記)처럼 고백 형식으로 재구성해 전해준다. 조몽구는 중학생 때 독의 세계에 심취하고 독을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더니, 독에 대항하는 특이한 면역체계를 갖추게 됐다는 것. 독이 곧 약으로 탈바꿈하게 된 상황은 선악이 공존하는 인간적 삶의 아이러니를 비유한다. 작가는 "살아 있는 매 순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외부의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다른 생명체를 공격적으로 섭취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며 "하지만 이 말 또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모든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썼다.

김인숙의 소설 '벚꽃의 우주'는 홀로 선 벚꽃 나무를 둘러싼 여러 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기록적인 폭염과 성수대교 붕괴, 지존파 살인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줬던 1994년이 소설의 음화(陰畵)로 깔려 있다. 1994년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은 아니지만, 그해 사춘기를 보낸 여성 '미라'가 이후에도 1994년의 또 다른 시공간에 놓인 듯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미라'는 1994년 열네 살에 홀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뒤 우주 속 고아처럼 자란다. 아이 엄마가 된 미라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시골집을 펜션으로 개조해 가족과 손님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미라의 집'을 완성하고픈 열망으로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그 집을 무대로 의문사가 이어지고, 1994년 벌어진 한 소년의 죽음이 다시 겹쳐지는 가운데 진실은 자꾸 땅에 묻히고, 주인공의 진술도 신뢰성을 잃어가면서 독자를 미궁에 빠지게 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동안 내가 있던 곳은 어느 우주의 어떤 집이었을까"라고 후기(後記)에 적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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