庭園은 최고의 학교, 모네·처칠도 유능한 정원사였다

채민기 기자
입력 2019.05.15 03:01

[알랭 바라통]
프랑스 베르사유궁 총괄 정원사… '서울로 정원 공모전' 심사차 방한
宮 정원 관리하는 200명 총지휘

"정원(庭園)은 인류 최고의 학교입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기만 하는 시대, 인내심을 갖고 세상의 흐름을 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으니까요."

서울역 앞 교통섬에서 만난 알랭 바라통은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역 앞 교통섬에서 만난 알랭 바라통은 "정원은 인내심을 가르쳐 주는 최고의 학교"라고 했다. 바라통 앞쪽 꽃이 피어 있는 정원은 '보태니 포 체인지' 정원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한 대학원생들의 작품이다. /이진한 기자
지난 3일 서울 퇴계로 서울로7017(서울역 고가 공원) 아래 교통섬에 생긴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프랑스 베르사유궁의 총괄 정원사 알랭 바라통(62)이 말했다. 그는 "정원 가꾸기는 계절의 흐름과 대지의 리듬을 따르는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관조하게 된다"며 "볼테르가 '자신의 정원을 가꿀 줄 아는 자는 인생을 아는 자'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헤르만 헤세, 클로드 모네, 윈스턴 처칠 같은 위인들이 유능한 정원사이기도 했던 데 대해서도 그는 "정원이 지혜를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바라통은 베르사유궁 정원의 유지·관리를 총괄한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그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의 만찬에 초대했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세계 유명 인사들이 정원을 방문할 때마다 안내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1976년 인턴 정원사로 출발해 1982년 총괄이 된 그는 "정원사로 일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피델 카스트로, 보리스 옐친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베르사유궁에서 정원의 '대운하'를 바라본 전경. /알랭 바라통
베르사유궁 정원의 면적은 850㏊(약 257만평)다. 꽃 100만 송이, 나무는 35만 그루, 그 사이사이로 43㎞에 달하는 오솔길이 나 있다. 정원 관리를 위해 정원사와 건축가가 협력하는 게 특징. 바라통은 정원사 200여명을 총지휘하고 건축가와 협의해 정원 디자인에도 참여한다. 정원은 약 100년마다 보식(補植) 작업을 하는데, 1999년엔 강력한 태풍으로 대대적인 보식을 진행했다. 그는 저서 '베르사유의 정원사'에서 "은퇴하는 날, 오솔길을 거닐며 내가 심은 나무들이 굳건하게 자란 모습을 바라보려 했던 오랜 소망이 물거품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바라통은 자신이 심사에 참여했던 대학·대학원생 정원 설계 공모전 '보태니 포 체인지(Botany for Change)' 시상식 참석차 한국에 왔다. 공모전을 주최하는 클로란 식물재단은 프랑스 화장품 회사 클로란의 모기업 피에르파브르그룹이 식물 보존·연구·교육 목적으로 세운 단체다. 프랑스 파리·마르세유에 이어 올해 대회를 서울에서 열고 서울로7017 하부 교통섬을 부지로 지목했다. 바라통이 바라보던 정원은 이곳에 실제 조성된 우승작(서울대 환경대학원 임다섭·이가영). 바라통은 "도시화로 멸종돼 가는 대표적인 꽃 수레국화가 가장 도시적인 장소에 피어 있는 모습이 시적(詩的)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이 정원은 개화기가 각기 다른 화초들이 자라나며 초봄·봄·초여름·여름·가을·늦가을·겨울로 세분된 계절 변화를 드러내도록 설계됐다.

식물과 정원은 최근 건축·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실내 장식에 식물을 적극 활용하고 아예 벽을 식물로 뒤덮기도 한다. 바라통은 "더 많은 곳에 식물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무분별한 활용은 경계했다. "벽에 식물을 자라게 하려고 화학약품을 쓰기도 하는데 이건 자연에 반하는 일이죠. 자연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조선일보 A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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